의료계 특위 출범·서울대병원 휴진 중단으로 우선 '고비' 넘겨
의협 "27일 전면적 투쟁은 아닐 것"…29일 올특위 2차 회의서 투쟁 방향 결정
의료공백 장기화에 여론 악화…의정 '물밑대화'로 협의체 구성 기대↑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의료공백 사태가 다섯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계가 목소리를 모으고 서울대병원이 무기한 휴진을 접기로 하면서 파국의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면서 악화한 여론 때문에라도 의정(醫政) 양측은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한 묘수 찾기에 골몰할 전망이다.
다만, 의료공백 사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인 데다 아직 대형병원들의 휴진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의료공백 사태의 여진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의료계 특위 첫 회의·서울대병원 휴진 중단…파국 고비 넘겨
24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시도의사회 대표 등 3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의 첫 회의를 22일 열었다.
올특위는 회의 후 형식, 의제에 구애 없이 대화가 가능하다는 정부 입장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의료계가 그간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첫 회의 후 올특위 반응에 의료 공백의 긴 터널이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더욱이 가장 먼저 '무기한 휴진' 카드를 꺼낸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이 휴진을 중단하기로 한 점도 의료 공백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리라는 기대를 키웠다.
의협도 임현택 회장의 단독 결정이라는 논란이 인 '27일 무기한 휴진'을 사실상 접었다.
임 회장은 지난 18일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27일부터 무기한 휴진하겠다"고 예고했고, 당시 이러한 발언이 의료계 내에서도 합의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의협은 '전면적인' 무기한 휴진은 하지 않고, 범의료계 위원회에서 향후 계획을 다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휴진 등 투쟁을 아예 중단하겠다기 보다는 지난 18일과 같은 형태는 아니라는 의미"라며 "앞서 모든 지역의 의사들이 참여하는 전면 휴진을 선언했으나 그런 형태로는 하지 않고, 향후 투쟁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직역의 의사들이 각자의 준비를 마치는 대로 휴진 투쟁에 동참해나갈 것이고, 이후의 투쟁은 29일 올특위 2차 회의의 결정대로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직 다른 대형병원들은 명시적으로는 휴진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서울대병원에 이어 의협까지 사실상 한발 물러남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은 오는 27일, 서울아산병원은 다음 달 4일 각각 휴진 계획을 발표한 상황이다.
서울성모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의대 교수들과 삼성서울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성균관의대 교수들은 오는 25일 휴진을 논의하는 총회를 연다.
가톨릭 의대 관계자는 "변한 것은 없다"며 "25일 총회에서 휴진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의료공백 사태에서 의대 교수들의 휴진은 선언적 반발에 그쳤고, 의협이 휴진을 주도한 개원의들도 실제 휴진율은 낮았기 때문에 추가 휴진은 그 여파가 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협이 이달 18일 집단 휴진을 강행했을 때 정부가 집계한 결과 휴진율은 14.9%(의협 추산 약 50%)에 그쳤다.
이는 2020년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협이 벌인 집단 휴진의 첫날 휴진율(8월 14일 3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20년 당시 휴진율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줄어 6.5%까지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출발점이 15%가량으로 더 낮았던 만큼 의협이 27일에 휴진을 강행한다 해도 참여율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 여론 악화로 의정 모두 입지 좁아져…협의체 구성 속도 내나
의료 공백 사태가 다섯 달째로 접어들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한 점도 의정 양측에는 사태 해결의 묘수를 찾아야 할 동기가 되고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이 법원 결정 등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의료공백 상황도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후 의정 양측이 한 치도 양보하지 않자 환자와 시민사회의 분노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유총) 등 환자단체들은 다음 달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환자와 보호자 1천명이 참여하는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촉구 환자 총궐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환자단체들에 따르면 1천명 규모가 참여하는 환자 집회는 과거에는 한 번도 없었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서라도 사태 해결을 촉구하겠다는 뜻이다.
환자와 시민사회는 의협이 주도한 집단휴진 당시 진료를 접은 병의원에 대한 '불매운동'도 벌이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환자를 외면하고 파업(휴진)에 동참한 병의원 명단 공개와 이용 거부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선언했고, 한 환자는 휴진한 의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의협과 세브란스병원이 집단휴진을 예고한 27일 지부장-전임 간부 연석회의를 열고 투쟁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며, 이달 말까지 진료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처럼 환자와 시민단체들 사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그간 '물밑 접촉' 수준에 그치던 의정 간 대화가 조만간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커졌다.
양측이 의제 등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를 본다면 조만간 의정 간 대화체가 꾸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의료계 입장에서도 (투쟁) 동력은 없고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아서 이대로 가면 좋을 게 없을 것"이라며 "이참에 정부와 의료계가 최대한 협상할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공의 복귀하지 않으면…사태 '종지부'는 요원
문제는 전공의다.
정부와 의료계 특위가 만나 합의점을 찾아간다고 해도 그동안 필수의료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해온 전공의들이 계속해서 뚜렷한 복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점은 사태 해결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이달 21일 현재 전체 수련병원 211곳에서는 전공의 1만3천756명 중 1천46명(7.6%)만 근무하고 있다.
복지부가 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등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이달 3일과 비교하면 출근한 전공의는 고작 33명 늘었다.
전공의 협의체도 꿈쩍 않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러 차례 올특위 불참 의사를 밝혔고, 첫 회의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특히 박 위원장이 임현택 의협회장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어 전공의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 관계자는 "의료계에서도 이 상황을 끝내지 못하면 애매해질 수 있는데, 전공의들이 얼마나 돌아올지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정부 정책 '백지화'는 해줄 수 없겠지만, 의료계든 정부든 전공의 복귀를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의사'들인 의대생들 역시 올특위 참여에 부정적인 태도는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만들어진 의대 총장들의 모임인 의대선진화를위한총장협의회(의총협)는 이달 19일 협의회 소속 총장 15여명이 처음으로 대면 회의를 열었고, 의대생들이 돌아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s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