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감식 참여한 김수영 박사 "화재 현장서 그렇게 많은 배터리 처음 봐"
불 붙은 배터리가 튕겨 나가며 연속 폭발…"진화 상당히 어려웠을 것"

(화성=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리튬 배터리 3만 4천여 개를 보관해 둔 상황에서 불이 났다니, 엄청난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의 원인 조사를 위한 합동 감식에 참여한 김수영 국립소방연구원 박사는 25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박사는 "그렇게 많은 배터리가 바닥에 널려 있는 화재 현장은 난생 처음이었다"며 "'(소방 당국이) 불을 끄기 진짜 어려웠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배터리가 한 곳에 몰리지 않고, 곳곳에 골고루 널려 있었다"며 최초 발화한 배터리가 수미터를 튕겨 나가 다른 배터리를 충격하고,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불길이 옮겨붙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리튬 배터리 화재는 보통 열 폭주 현상이 원인이 돼 나타난다.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된 배터리에서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지 않도록 막는 분리막이 손상되면 화재와 폭발이 날 수 있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리튬 배터리에 들어가는 독성 물질인 염화티오닐(SOCL2)이 기화한다.

염화티오닐이 기화한 상태에서 호흡이 이뤄지면 사람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불이 난 건물은 '군 납품용 일차전지' 완제품을 검사하고 포장하는 장소이다.

김 박사는 "군용은 배터리 용량을 크게 높여 1년 이상 쓸 수 있도록 만든다"며 일반 배터리에 비해 용량이 큰 군용 배터리가 화재 현장에서는 더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물을 이용한 소방당국의 진화 방식이 적절했는지에 관한 논란에 "주로 리튬 분말을 이용하는 실험실에서나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로 과도한 비판"이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리튬이 물과 닿으면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소방당국이 소방수 대신 마른 모래로 진압에 나서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박사는 "미국 화재방재청(NFPA)도 배터리 내부의 리튬이 순수한 리튬 금속이 아닌 리튬염을 녹인 전해질이기 때문에 물과 반응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못 관리한 모래에 습기가 생겨 오히려 화염을 키웠다는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다"며 물을 뿌려 주변 환경을 발화점 이하로 떨어뜨리는 '냉각'이 국제 표준이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리튬 배터리 화재는 일단 발생하면 대부분 전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배터리 화재 현장에서는 무조건 대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전했다.

그는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등을 언급하며 "에너지 전환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리튬 배터리를 써야 하겠지만 아직 획기적 소화 약재가 개발되지 않아 전 세계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김 박사는 "배터리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 만큼 그에 맞춰 R&D(연구개발)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진압 장비도 빨리 개발해야 한다"며 "화재 초기에 드론을 진입시켜 소화 약재를 뿌리거나 연소 확대를 저지하는 분리벽을 개발해 설치하는 방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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