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간담회…의료공백 장기화에 환자·병원노동자·의료산업계 '탄식'
"중증·희귀난치질환자 진료 한다지만, '빅5' 병원서도 진료 중단"
"PA 간호사, 교수 비서 채용하듯 늘려" 비판…"의료기기업계 매출 최대 70% 감소"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전공의 이탈 사태로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의 유전자 검사가 4월에서 5월로, 다시 8월 말로 미뤄졌습니다. 전공의들은 복귀율이 굉장히 낮고 아무도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고 있어서 아마 올해 안에 검사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서이슬 한국PROS(프로스)환자단체 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공백 장기화 사태 병원·환자·산업계 긴급 간담회'에서 전공의 병원 이탈로 10만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복합 혈관 희소 질환인 '프로스'를 앓고 있는 자녀가 약물 사용을 위한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을 터뜨렸다.

서 대표는 "2012년생인 저희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프로스라는 희소질환을 진단받았다"며 "아이에게 쓸 수 있는 임상 약물이 하나 있고 이 약물을 쓰려면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데, 마취과 전공의가 없어서 검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대 교수님들은 휴진하더라도 중증·희귀난치질환자 진료는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빅5' 병원에서는 검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고 신규환자도 받지 않고 있으며 언제 다시 신규 환자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역병원들도 찾아봤지만, 서울 빅5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라며 "빅5 병원 진료가 막힌 상황에서 아이의 치료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고, 자꾸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고 울먹였다.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이 5개월째에 접어들면서 환자와 의료계 내 타 직역 노동자, 의료산업계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빅5 병원 중 한 곳인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이날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면서 앞으로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권미경 연세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 위원장은 "전공의 이탈 사태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일평균 환자가 1만명에서 8천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일부 교수들의 집단휴진 동참으로) 환자 수가 10% 정도 더 줄 것으로 보인다"며 "진료 연기나 수술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이루 말할 수 없고 응급실도 최소로 운영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연세의료원은 현재까지 총 3천억원 이상의 의료이익이 감소했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무급휴가를 쓰라고 공지하고 있다"며 "휴가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업무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병동이 폐쇄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휴가를 가게 돼 사실상 강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은영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경희의료원지부장은 정부가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가 합법적으로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하면서 "진료지원(PA) 간호사가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부장은 "개인 비서를 채용하듯 교수 1명당 PA 간호사 1명을 요구하고 있다"며 "교수 소속으로 들어간 PA 간호사는 교수 인력이 돼 간호부서나 병원이 통제할 수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권미경 위원장은 "전공의를 대체해 PA간호사를 수술실 등에 한시적으로 파견하고 있는데 적어도 3년차 이상의 간호사를 요구했지만 1년차 등 경력이 짧은 간호사가 투입돼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난으로 대형병원들이 투자를 전면 중단하면서 의료산업도 위축됐다.

임민혁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본부장은 "의료공백 장기화가 의료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병원과 의료기기업체의 계약이 이행되지 않고 있고, 신규 영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며 "회원사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의료기기 업계의 매출은 20∼70%까지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희귀질환 수술에 이용하는 필수의료기기는 공급 중단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고, 실제로 공급이 중단된 후에는 공급 재개에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병원의 결제 대금 지급도 계속 미뤄지고 있어서 영세 의료기기업체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이끈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실 의사단체와 정부에 저희가 어저께 공론화위원회를 국회 내에 구성해 시민단체와 관련된 분들과 다 함께 논의하자고 했다"며 "내년 의대 정원은 이미 결정된 부분이고, 그것만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오늘 간담회를 통해 역할을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dind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