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사고 대부분 큰 충돌로 끝나"…운전 부주의 가능성 제기
"급발진·전자 결함 배제 못해" 의견도…일단 국과수 감식이 규명 열쇠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이미령 기자 =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3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역주행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고 원인을 비롯한 경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해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제동장치 조작 실수 등 운전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2일 사고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 등에 따르면 운전자 A(68)씨가 몰던 제네시스 차량은 전날 오후 9시 27분께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와 일방통행인 4차선 도로를 200m가량 역주행했다.
이 과정에서 차량 두 대를 들이받고 인도의 보행자들을 덮치고는 교차로를 가로질러 반대편 시청역 12번 출구 인근에 멈춰 섰다.
A씨는 사고 직후 경찰에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오전 한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으나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문을 사는 점은 통상 급발진 사고의 경우 차량을 제어할 수 없어 벽이나 가로등을 들이받고서야 끝나지만 이날 사고는 CCTV 영상 등에선 차량이 감속하다가 스스로 멈춰 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급발진 의심 사고는 끝까지 차량이 오작동해 큰 충돌 후 강제로 멈추는데 이번 사고는 마지막에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한 것으로 보아 운전자의 착각에 의한 사고가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도 "급발진 차량이 사고 이후 갑자기 정상적으로 바뀌어 멈췄다고 가정하기는 어렵다"며 "일방통행 도로에 역주행으로 진입해 당황한 운전자가 빨리 빠져나가려고 하다 보니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당황해 가속페달 밟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반면 2002년 한국 첫 자동차 정비 명장으로 선정된 박병일 박앤장기술로펌차량기술연구소 대표는 "사고 크기와 상태, 충격의 정도를 보면 급발진의 가능성이 꽤 높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급발진해 분당 회전수(RPM)가 급상승하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량이 밀린다"며 "요즘 차량에 쓰이는 전자식 브레이크는 기계식처럼 작동하는 게 아니라 전자적 결함이 발생하면 브레이크가 강하게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부연했다.
비록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하지는 않았지만, 지속해 강하게 눌렀다면 마지막에 이르러 멈췄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진혁 서정대 자동차과 교수도 "전자화된 근래 자동차는 해당 지역 근처의 전자파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안전장치가 작동하면 안 되는데 작동한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 등 전자적인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운전자가 사건 당시 상황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해 진술하는지가 관건"이라며 "브레이크를 밟아 쑥 들어갔지만 속도가 줄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급발진 주장에 신빙성이 없고, (브레이크가) 딱딱해서 아무리 힘을 줘도 꿈쩍하지 않았다면 의심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운행 과정에서 브레이크등이 계속 들어왔는지 체크 여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CCTV와 주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운전자가 확실히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인 한문철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한문철TV'에 올린 영상에서 "차량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운전자가 당황하거나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안 멈춘다'고 말하는 정황 등이 담긴 오디오 블랙박스가 증거가 될 수 있다"며 "형사재판에서 운전자가 사고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정황이 담긴 오디오 블랙박스를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리콜센터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5월까지 14년간 접수한 급발진 의심 사고 793건 중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현재까지 1건도 없다.
경찰은 일단 급발진은 A씨의 진술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사고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하는 한편 CCTV 및 블랙박스 영상, 목격자 진술 등을 분석, 사고 경위를 다각도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가 사고 경위 규명에 열쇠가 될 전망이다. 다만 30초에서 1분 정도 비교적 길게 급발진 의심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블랙박스 영상 등이 판단을 위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이번처럼 순식간에 사고가 일어난 경우엔 경위 파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사고로 6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3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 4명이 다쳤으나 생명에 지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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