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련병원에 "15일까지 사직처리, 17일까지 하반기 모집인원 확정해야"
'인기과목' 전공의 복귀 가능성…'빅5' 병원으로 전공의 이동할 수도
전공의들은 "안 돌아간다"…"필수·지역의료 위기 더 커질 것"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김잔디 권지현 기자 =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하면서 이제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대다수 전공의는 정부가 그간 불법적으로 행정명령을 내렸으므로 '처분 철회'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며 복귀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인기과는 복귀하는 전공의가 꽤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직 후 '빅5'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옮기려는 전공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은 필수의료나 지역의료의 공백을 메우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아 필수·지역의료 위기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정부,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속도'…"15일까지 복귀·사직 처리해야"
9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후 그 결과를 담은 공문을 각 수련병원에 발송했다.
공문에는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을 철회하는 내용과 함께, 복귀한 전공의와 사직 후 9월(하반기)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들에게는 특례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공문을 통해 이달 15일까지 전공의들의 복귀·사직을 처리해 전공의 결원을 확정할 것을 수련병원에 요구했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내년도 전공의 정원을 줄일 수 있다고 명시했는데, 인력 구조상 전공의 비중이 큰 수련병원 입장에서 정원 감축은 불이익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행정처분 철회 등으로 전공의들에게 '당근'을 제시하는 한편, 전공의 사직 여부를 조기에 확정하도록 병원을 '압박'해 그 복귀율을 높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달 8일 현재 전체 211개 수련병원의 전공의 1만3천756명 가운데 근무자는 1천95명(출근율 8.0%)에 불과하다.
◇ 전공의들 "안 돌아간다" 말하지만…'빅5' 병원 인기과목으로 이동 가능성도
일단 의료 현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전공의들이 쉽게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일부 진전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사과 없이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2년 차로 수련하다 사직서를 낸 한 전공의는 "애초에 정부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했으니 그걸 안 한다고 한들 우리한테 크게 와닿는 건 없다"며 "우리가 바라는 건 정부의 사과"라고 말했다.
'빅5' 병원 중 한 곳의 한 교수도 "이제는 (복귀) 시기를 넘은 것 같다"며 "전공의들의 전면적인 복귀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전공의의 복귀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직 후 하반기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들에게는 특례를 적용해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한다는 정부의 조치가 전공의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빅5' 병원의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인기과 전공의가 끝내 복귀를 거부할 경우 다른 병원의 전공의가 이에 지원할 수 있다.
국내 최고의 병원인 데다 인기과목이기 때문에 비수도권 병원 등의 전공의들에게는 지원 요인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빅5' 병원의 전공의들로서는 복귀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의료계에서 전날 정부의 조치를 두고 '전공의 갈라치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석균 연세대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방에 있는 전공의들에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와서 지원하라는 뜻 아니냐"며 "전공의들을 상대로 너의 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니 빨리 복귀하라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 "필수·지역의료 위기 더 커질 것" 우려 목소리도
의사들 사이에서는 정부 대책에 거센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이러한 병원 이동을 '택(tag)갈이'(옷 브랜드 바꿔치기)에 빗대 조롱하고 있다.
의사·의대생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는 전날 정부 발표를 두고 "빅5라도 어떻게든 살려보자며 꺼내든 카드"라고 평가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 작성자는 하반기 모집을 통한 다른 병원으로의 이동을 '택갈이'로 지칭하며 "지방 전공의들이 서울로 택갈이하러 가면 버려진 지방 병원들의 파산을 막을 대책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도 정부는 지방 전공의 비율을 높이겠다는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고 비난했다.
대한의학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사직 전공의들의 지원을 허용하는 것은 의료현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의학회는 "이 결과로 일부 전공의가 돌아오는 상황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의료정상화를 위해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며 "지방 전공의나 소위 비인기과 전공의가 서울의 대형병원 또는 인기과로 이동 지원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고, 지방·필수의료의 파탄은 오히려 가속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송 위험에 비해 적은 보상 때문에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인기과로 몰리는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톨릭의대 등 전국 34개 의대 교수들도 이날 "정부 조치가 지방병원 전공의들을 수도권으로 유인해 지역 필수의료 위기가 뒤따를 것"이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s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