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들,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 '무관심' 기색 역력

"페이 반토막 난 것 같다"…"다수가 미국 의사 면허 준비"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올해 9월 수련을 재개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시작됐지만 전공의들은 수련병원 대신 개원가와 해외 진출, 입대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다만 사직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일반의(GP) 취업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입대 역시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사직 처리된 전공의 대다수가 올해 하반기 수련에 복귀하지 않고 미용병원이나 요양병원 취업, 미국 의사 면허 취득 등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17일까지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 1만3천531명 중 사직 및 임용 포기로 처리된 인원은 7천648명(56.5%)으로, 이들은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응시할 수 있지만 상당수는 수련을 재개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의 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일단 GP로 살다가 다음에 상황 보고 수련을 이어갈지 결정할 생각"이라며 "우선은 대학병원 말고 1, 2차 병원에서 적절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직한 전공의들은 수련을 완전히 마치지 않은 탓에 전문성을 살려서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몇 년간 수련한 고연차 전공의들은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수련 기간이 짧은 저연차의 경우 구직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전언이다.

의사들은 통상 인턴 1년과 진료과목을 정한 레지던트 3∼4년 등 전공의로 수련을 마친 뒤 과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

더욱이 사직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개원가로 쏟아져 나오다 보니 연봉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적절한 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서울시내 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B씨는 "페이는 월 1천만원 넘던 게 500만∼6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고 들었다"며 "면접 보고 나면 더 깎는 경우도 부지기수여서 실제로는 더 깎일 수도 있는데, 요즘에는 워낙 경쟁이 심해져서 그래도 지원이 많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생활고로 인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미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전공의들이 많다"며 "너무 일자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병원에서는 '오래 일할 사람'을 선호해 사직 전공의들을 꺼리기도 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전문의 자격이 없는 전공의를 받는 데 난색을 보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

현재 구직 중이라는 한 사직 전공의 C씨는 "미용 쪽은 면접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병원에서는 대부분의 사직 전공의를 머지 않아 돌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해 뽑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원가도 전공의들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수 있을지 고민이 깊다.

서울 시내 한 성형외과 개원의는 "선배들이 사직 전공의들을 도와야 하지만 아무래도 각 진료과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인력은 정해져 있다"며 "과별로 특성이 달라서 당장은 맡길 수 있는 게 제한적일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리는 전공의들도 적지 않다.

이미 구직을 완료했다는 사직 전공의 D씨는 "이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근무 중이지만 미국 의사 면허를 따는 걸 고민했었고, 실제 주위에서도 많이 준비하는 중"이라며 "관련 세미나가 매달 열리고 참석자도 많은 걸로 안다"고 전했다.

선배 의사들은 전공의와의 교류를 늘리면서 이들의 구직난 해소 등을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사회는 구인구직게시판을 개설해 취업을 원하는 전공의와 개원의를 연계하는 한편, 전공의들이 지역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전공의들이 커뮤니티 케어 등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전공의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등도 고민 중"이라며 "이들이 의사로서 국민 건강을 살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개원의협의회도 각 직역 의사회와 공조해 전공의들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사직 전공의와 개원가 사이에 적절한 자리를 연결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편 사직한 남성 전공의의 경우 군입대도 준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복지부에 따르면 의사들은 인턴 때 군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일단 등록하면 복무 기간이 짧은 일반병사가 아닌 군의관,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등으로 군 복무 의무를 다해야 한다.

9월에 복귀하지 않고 군의관, 공보의로 복무하려 해도 한 해 수급 규모(군의관 700∼800명, 공보의 300∼400명)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입대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

이 경우 전공의가 수련병원에 복귀하지 않고 다른 병원에 취업하거나 개업해 개원의로 활동하려고 해도 군 복무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으로 의료계는 예상했다.

jan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