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재판부 "변호인 3명이면 충분…변명 여지 없어"…준비기일 1주만 연기

李측 "자료 워낙 방대…검찰 2년 수사했지만 우린 두달 검토" 하소연

"3회 준비절차로 충분", "일반재판과 비교는 무리" 법조계 의견 분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맡은 재판장이 "이런 재판 지연은 처음 본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지난 12일 오전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는 이 대표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등 혐의 사건에 대한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사건 재판이 지나치게 지연되는 게 맞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사건 자체가 국민적 관심 사안이기도 하고 변호인과 검사님들이 무게를 두고 준비하고 있는 걸 알고 있지만 통상적 절차에 비춰보면 이렇게까지 지연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제1야당 대표의 '대북 뇌물' 사건을 맡은 재판장이 이례적으로 재판 지연 상황을 경고한 셈이다.

이 대표는 쌍방울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 사건 공범 혐의로 지난 6월 12일 불구속 기소됐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외국환거래법 및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일반적으로 증거기록이 방대한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정식 재판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절차를 열어 검찰의 입증계획, 변호인의 증거기록 열람 및 등사와 검토 진행 경과를 확인한다.

첫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 요지를 밝히고, 변호인은 이에 대한 입장(혐의 인정 또는 부인 여부 등)을 진술하는데, 이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한 사전 점검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통상 1∼2차 준비기일을 거쳐 본 재판이 시작되는데, 이 대표 사건의 경우 3차 준비기일까지도 변호인 측이 기록 검토를 절반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고 하자, 재판부가 시간을 더는 줄 수 없다고 주의를 준 것이다.

재판장은 "두 달 정도 준비절차 한 뒤 공판기일을 할 계획이었는데 예상보다 늦어졌다"며 "재판부 입장에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재판과 너무 차이 나게 늦어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사건 내용을 더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적에 이 대표 변호인들은 "수사기록 목록만 700쪽이 넘는다. 인간적으로 기록이 너무 많다. 다른 재판도 해야 한다"라거나 "다른 일 다 제쳐놓고 하루에 기록을 8시간씩 보고 있다. 하루에 한권 반 정도 분량의 기록을 소화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검찰은 2021년부터 이 사건에 매달려 사건을 잘 파악 중인데 저희는 공판 단계에 투입됐다. 마스킹(개인정보 등을 가리는 작업) 이슈도 있었고, 입증 계획을 모색하기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최대한 방어권 보장을 위해 2주 만이라도 시간 여유를 더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변호인 3명이면 (기록 검토에) 충분하지 않으냐"며 당초 다음 달 10일로 지정하려고 했던 네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1주일 더 연장해 다음 달 17일로 잡으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날 준비기일을 마무리하겠다"고 정리했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말부터 내년 1월 초 법정 휴정기 등을 고려하면 이 대표의 정식 재판은 이르면 1월 중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재판 지연 논란을 두고 법조계에선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수도권의 한 변호사는 "보통 증거기록 상당수가 공문서 등 객관적 문서이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 진술 자료는 통상의 시간 내에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며 "준비절차가 3회나 진행됐는데 아직 절반밖에 못 봤다는 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이재명 재판은 수사기록이 방대한 예외적인 사건으로 일반 형사재판의 상황을 여기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다만 재판장이 이런 주의를 줘야 변호인이 보다 신속하게 준비할 것이다. 재판을 진행하는 스킬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지난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 측에 다음 준비기일에 입증계획을 준비해 오라면서 "이번 달 말에 (공범인) 이화영 피고인의 항소심 선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 내용까지 반영해 입증계획을 준비해주면 그걸 토대로 향후 절차 진행을 협의한 다음에 공판기일을 진행하겠다"고 당부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가운데 800만 달러를 불법 밀반출한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사건의 1심에서 징역 9년 6월을 선고받았고, 1심은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한 것이라고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이 전 부지사의 항소심에서 이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확정되거나, 또는 부인된다면 이를 이 대표 재판 입증 계획에 반영해달라는 취지다.

한 변호사는 "2심까지가 사실심이기 때문에 2심 결론이 나면 쌍방울이 북한에 외화를 건넨 것, 대납한 목적 등이 사실로 확정된다"며 "(2심 판단이 1심과 동일하다면) 이 대표 재판에서는 그 사실관계를 다투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2019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에게 경기도가 북한에 지급하기로 약속한 '황해도 스마트팜 지원' 사업비 500만 달러와 도지사 방북 의전비 300만 달러를 대납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대표가 그 대가로 김 전 회장에게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에 대한 경기도의 지원과 보증'을 약속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 대표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young8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