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 지출'로만 감축하려 해도 교통·농업 등 부처 전면 폐쇄해도 역부족

'비효율' 공감하더라도 예산삭감은 다른 문제…의회 동의 난항 예상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이끄는 차기 미국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수장에 낙점된 일본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정부지출에서 '낭비'를 근절해 2조 달러(2천800조원)를 감축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이 구상은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

영국 BBC 방송은 머스크가 지난달 뉴욕시에서 열린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 유세에서 머스크가 했던 이 발언의 현실성을 분석하는 검증기사를 14일 온라인으로 실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작년 10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였던 최근 회계연도에 미국 연방정부는 6조7천500억 달러(9천490조원)를 지출했다. 머스크가 언급한 감축 폭 2조 달러는 연방정부 연간 지출의 약 30%에 해당하는 셈이다.

연간 연방정부 지출액의 13%인 8천820억 달러(1천240조원)는 국가 부채의 이자 지급에 쓰이는 돈이다. 이를 감축해버리겠다는 것은 정부가 고의로 '국가부도'를 내겠다는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지출의 22%인 1조4천600억 달러(2천50조원)는 사회보장제도에 쓰이며, 이는 수급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반드시 써야만 하도록 법으로 정해진 '의무 지출' 항목이다.

의무 지출 항목 중 다른 굵직한 것으로는 연간 정부 지출액의 13%를 차지하는 메디케어(고령자를 위한 등을 위한 정부 지원 의료보험)가 있다. 여기에 8천740억 달러(1천230조원)가 들어간다.

법 자체에 지출 의무가 못박혀 있는 것은 아니고 매년 의회에서 투표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지출을 지칭하는 연방정부의 '재량 지출' 분야는 국방(8천740억 달러(1천230조원)·13%), 교통(1천370억 달러(193조원)·2%), 교육·훈련·고용·사회서비스(3천50억 달러(429조원)·5%) 등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 1일부터 2023년 9월 30일) 연방정부 지출 총액 중 재량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였다.

이론상으로 보면, 차기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의무 지출 항목보다는 재량 지출 항목 쪽이 감축하기가 더 쉽다.

2023 회계연도에 연방정부의 재량 지출은 1조7천억 달러(2천400조 원)에 불과했으며, 이를 전액 삭감하려면 교통부, 농림부, 국토안보부를 전면 폐쇄해야 한다. 그래도 감축 폭이 머스크가 호언장담했던 2조 달러에는 못 미친다.

머스크는 '2조 달러 삭감'이 연간 수치인지 혹은 다년간에 걸친 목표치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양쪽 중 어느 쪽이든 단기간에 그 정도 규모의 지출 감축을 하려면 중요한 정부 기능 수행이 무너지거나 대중의 저항이 매우 심할 수밖에 없다는 게 회계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 지출 감축이 소신인 토머스 매시 연방하원의원(공화·켄터키주)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선거에 졌다는 사람은 없다"며 "과연 의회가 행동을 취할지 확신이 없지만, 그렇게 하기를 희망한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2022년에 공화당은 하원을 장악했을 때 연방정부 지출 감축을 시도했으나 당내에서도 반대가 커서 머스크가 내세운 목표의 15분의 1 수준인 1천300억 달러(183조원) 삭감안을 통과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인은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연금에 붙는 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했으며, 미국 주변에 '아이언 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이런 공약을 지키려면 관련 분야 지출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BBC에 따르면 미국 연방 지출 총액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 회계연도 기준으로 약 23%였다.

다만 학교 관련 지출은 대부분이 연방정부가 아니라 각 주에 의해 집행되며, 이런 점까지 감안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2024년 미국의 '일반 정부 지출' 총액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7.5% 수준이다.

이는 프랑스(57.2%), 이탈리아(50.6%), 독일(48.2%), 영국(43.4%), 캐나다(43.3%), 일본(42.2%) 등 다른 주요 선진국들보다 훨씬 낮다.

현재 미국 정부는 GDP의 약 6% 수준에 해당하는 규모의 적자를 내고 있으며, 미국의 국가 공공부채는 경제 규모의 약 97%다.

특정 정파 소속이 아닌 싱크탱크 '책임성 있는 연방 예산을 위한 위원회'(CRFB)는 지금까지 기조로는 미국 국가 부채가 2035년에는 GDP의 125%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지출 대폭 삭감을 병행하지 않고 감세 공약을 실행해버리면 향후 10년간 미국 정부 적자가 더욱 불어나면서 국가 부채가 2035년께엔 GDP 대비 143%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머스크와 인도계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에게 신설될 '정부 효율부'(DOGE)를 맡겨서 정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며 정부기관들을 구조조정해 정부 지출 감축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머스크는 12일 DOGE 공동수장으로 낙점된 후 "연방기관이 428개나 필요한가. 들어보지도 못하는 기관이 많고 영역이 겹치는 기관도 많다"며 '99개면 충분하다'는 글을 X에 게시했다.

앞서 머스크는 2022년 10월 소셜미디어 트위터(현재 X)를 인수한 후 인력을 8천명에서 1천500명으로 줄였다고 2023년 4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연방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은 민간기업 지출을 줄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마음대로 없앨 수 없는 각종 법규를 준수하면서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 싱크탱크 '케이토 연구소' 소속 연방정부예산 분야 전문가 크리스 에드워즈는 머스크와 라마스와미의 입장에선 공화당 의원들이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WSJ에 설명했다.

공화당 의원들 상당수가 농가 보조금, 청정에너지 프로그램, 군기지 등 이런저런 사업들에 예산을 주기를 원하고 삭감에 반대할 것이므로, 공화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해도 지출 감축안이 통과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에드워즈는 머스크와 라마스와미가 단순히 '효율성'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며 "진짜로 지출을 감축하고 싶다면, 일단 소규모의 감축을 실행해 성공한 사례가 내년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