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고대 지중해 세계는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신흥 해상강국 아테네와 기존 패권국 스파르타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단순한 양국 간 분쟁을 넘어 고대 그리스의 모든 폴리스를 빨아들인 대규모 전쟁이었다.
고대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의 원인을 "아테네의 부상이 스파르타를 두렵게 했고, 그 두려움이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규정했다. 당시 아테네는 경제력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었고, 스파르타는 이를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지난 500년간 기존 패권국과 신흥세력 간 충돌 사례 16번 중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강대국 간 세력 전이가 있을 때 전쟁은 거의 본능처럼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관세 전쟁은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패권 다툼의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추가 관세를 최고 145%까지 끌어올렸고 중국은 미국산 수입품 관세율을 34%에서 84%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중국도 맞대응하며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문제는 양국 간 갈등이 정책 충돌을 넘어 체제 경쟁으로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분리, 이른바 '디커플링'이 현실화하면서 갈등의 접점은 늘어나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앨리슨 교수는 최근 하버드대 '중국 포럼'에서 미·중 간 관세 분쟁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상호 의존관계를 고려하면 전쟁이 필연적이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다만 양국이 '협력'대신 '경쟁'을 택한다면 역사상 가장 격렬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중국은 아테네처럼 상승 중이고, 미국은 스파르타처럼 반응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몽'과 '일대일로'를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대중 강경 노선은 바이든 행정부 뿐만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초당적으로 굳어져 유지되고 있다. 미·중 간 충돌은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위기로 직결된다. 양국의 관세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으며, 그 영향은 세계 각국의 경제에 전이되고 있다.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하면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앨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숙명이 아니라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전면전 없이 공존했다. 그 이면에는 냉철한 위기관리와 소통,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미·중 관계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서로를 적대시하기보다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파트너로 인식하는 데 있다. 양국이 역사에서 배운다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