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구조상 누구도 예측 못해…언론 예상 모두 빗나갈 것"

"교황, 韓비상계엄 사태에 '어떻게 이런 일이…잘 해결되길'"

"차기 교황에게 필요한 자질은 '경청'…개혁의 본질은 복음 실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24일(현지시간) 차기 교황 유력 후보설에 손사래를 치며 무의미한 추측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유 추기경은 이날 교황청 성직자부 청사에서 연합뉴스를 비롯해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취재차 바티칸을 찾은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다음 교황이 누가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는 "지금까지 언론이 맞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역사적인 사실"이라며 "언론에서 많은 예상을 내놓겠지만 틀림없이 모두 빗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Conclave·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의 투표 구조상 누구도 차기 교황을 예측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콘클라베에는 출마 선언이나 공식 후보 등록이 없기 때문에 유력 후보를 점치는 것 자체가 콘클라베의 투표 구조와는 맞지 않다는 게 유 추기경의 설명이다.

그는 "콘클라베에는 후보자가 없다. 모든 추기경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의 이름을 적어 투표한다"며 "이런 방식으로 3분의 2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한다. 결국은 표가 모이는 방향을 통해 차기 교황이 결정되겠지만 그전에는 누구도 맞힐 수 없고, 맞힌 적도 없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후 후임 교황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꼽은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에 이름을 올려 관심을 끌었다.

가톨릭계에서는 교세가 침체한 유럽과는 달리 나날이 교세가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교황 탄생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유 추기경은 지난해 1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주목해야 할 차기 교황 후보군에 뽑히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이에 대해선 "영광스럽지만 감히…"라며 "하하하 웃고 넘겼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한국인 성직자 최초의 교황청 장관인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수행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미 교황은 한국에 대해 잘 아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교황이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도 잘 알고 있었으며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교황은 한국의 분단 현실에 대해서도 깊은 연민을 보였다고 유 추기경은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말 훌륭하고 멋있게 사셨다.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나도 그렇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교황이 누가 되든 가장 필요한 자질로 '경청하는 자세'를 꼽았다.

유 추기경은 "지금은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만 내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차기 교황은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지도자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잘 듣는 게 중요하다고 늘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바티칸에 도착한 이후 가장 많이 드린 기도가 바로 '하느님, 제가 잘 들을 수 있게 해주십시요'였다"며 "경청은 사랑이며, 그것이 복음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주요 외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개혁 성향으로 규정하고 차기 교황 선출을 '보수 대 개혁' 구도로 묘사한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 추기경은 "개혁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혁적이라고 부르기보다 복음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따르는 것보다 더 큰 쇄신과 개혁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을 실천했기에 자연스럽게 쇄신과 개혁이 이뤄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보수나 개혁이냐가 아니라 복음대로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chang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