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이 50여년 전 베트남 전쟁 휴전 협상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맥스 해스팅스 전 편집국장은 17일(현지시간) 칼럼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과 베트남 전쟁 휴전 협상의 과정과 결과 등을 비교했다.
일단 휴전 협상의 형식부터 두 전쟁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해스팅스 전 국장의 분석이다.
1968년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프랑스 파리에서 북베트남과의 휴전 협상을 벌이면서 남베트남 정부를 초대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부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존슨 전 대통령을 비롯해 후임자인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휴전 협상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남베트남 정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전쟁 당사자를 배제했다는 것 외에도 50여년의 시차를 둔 미국의 협상 상대가 보이는 모습에도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휴전이나 평화가 아닌 승리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협상 대표였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협상에서 실패를 거듭한 것도 북베트남 대표단을 이끈 레득토의 목표가 평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키신저는 닉슨 전 대통령의 재선을 앞둔 1972년 10월 휴전 협정 초안 합의를 이뤘지만, 그는 협정의 내용이 평화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키신저는 닉슨 전 대통령에게 "우리가 지금 합의하면 1974년 1월쯤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북베트남과의 합의가 표면적으로는 '평화'로 포장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북베트남이 시간이 흐르면 남베트남을 점령할 것이 명백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평화협정 내용에 대해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 응우옌 반티에우는 강력하게 저항했고, 협정 서명도 4개월 가까이 지연됐다.
닉슨 전 대통령은 협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응우옌 전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 '지원을 끊겠다'고 겁박하기도 했다.
결국 1973년 평화협정 서명식이 열렸고, 2년 후 남베트남은 멸망했다.
푸틴 대통령도 협상에서 평화에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러시아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혀 타협할 생각이 없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꾸준하게 압박을 이어 나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전쟁에서 빠질 경우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무장시킬 능력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키신저는 협정을 성사한 뒤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해스팅스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도 내용이 없는 협정을 추진해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