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봉저수지 저수율 15.7% 역대 최저…단수 걱정에 관광객 발길 '뚝'
누적 강수량 평년 44% 불과…비 소식 간절하나 당분간 해갈 어려워
"배추 농사 30년 인생에 이런 가뭄은 처음이에요. 3천평에 심은 자식 같은 배추를 다 버리게 생겼습니다."
29일 찾은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단지인 안반데기. 해발 1천100m 위에 드넓게 자리 잡은 배추밭 약 200만㎡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푸르스름하고 멀쩡해 보이는 배추들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뒤집어 본 배춧속은 누렇고 거뭇거뭇해 식탁에는 오를 수 없는 병든 상태였다.
이맘때쯤 짙은 초록빛을 뽐내는 배추를 한창 수확해야 하지만, 극한 가뭄 탓에 배춧속이 가운데서부터 녹아버리는 이른바 '꿀통 배추'가 늘어나면서 농가에는 한숨이 가득했다.
배추 농가에서는 너른 땅에 심은 배추의 10%도 채 수확하지 못한 채 출하를 포기하거나 값비싼 영양제를 뿌려가며 '남은 배추 살리기'에 안간힘을 쏟는 모습이었다.
안반데기에서 10년째 배추를 키우는 임은빈(56) 농업회사법인명품 사장은 "배추는 95%가 수분인 채소로 충분한 수분이 확보돼야 줄기와 잎이 제대로 자라고 속이 단단하게 차는데, 올해는 가뭄으로 수확량이 예년 대비 70% 정도 줄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나마 멀쩡한 배추도 평상시보다 ⅓ 정도 작아 상품성이 크게 떨어져 경제적 손해만 약 4천만원에 달한다"며 "두 달 동안 애지중지 키운 자식 같은 배추인데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호소했다.
임씨는 지난 6월 말 가뭄에 대비해 농업용수 장치를 설치했으나 저수지 담수 용량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장치를 써보지도 못한 채 인건비와 설치비만 들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추밭에서 병충해 작업을 하는 윤상섭(60)씨도 "비가 오지 않으면 배추에 병충해가 더 많이 생긴다"며 "배추가 제때 자라야 하는데 약을 줘도 잘 자라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토양이 진흙으로 이뤄진 안반데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강릉 왕산면 대기리 등 농지가 더 척박한 곳은 손 쓸 틈조차 없다.
강릉은 계속된 가뭄으로 지역 87%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이날 15.7%(평년 71.0%)로 뚝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찾은 오봉저수지는 바짝 마른 바닥을 드러내고 풀이 자라 휑뎅그렁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지난 20일부터 각 가정의 수도 계량기 50%를 잠금 하는 제한 급수가 시행되고 소방차 등을 이용한 운반급수 등 대대적인 생활용수 확보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폭염이 지속하고 가뭄을 해결할 만큼 많은 양의 비 소식도 없는 탓에 주말 이후 저수율이 15% 미만까지 떨어질 우려가 큰 상황이다.
심각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강릉지역 일부 식당, 카페 등은 물 절약 동참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찾은 경포 한 식당에는 '강릉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물 절약 실천에 동참하거나 25∼29일 임시휴무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50대 업주 A씨는 "11년째 식당을 운영하면서 이런 가뭄 상황은 처음이다. 상상도 못 했다"며 "식당은 채소를 씻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물 쓸 일이 많아서 이번 기회에 물도 아낄 겸 임시 휴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강릉 한 뷔페식당도 최근 지역 맘 카페에 물 절약 동참을 위해 내달 6일까지 점심 영업만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식당은 공지에서 "코로나 때도 제대로 운영 못 했는데 많은 분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잘 버텼다"며 "일주일 내내 고민하다 결정하고 나니 오히려 후련하다"고 밝혔다.
단수 걱정에 일부 영세 펜션들에는 손님 발길이 뚝 끊긴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경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B씨는 "단수 중인지 묻는 관광객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예약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아니라 9월에는 예약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포 지역 펜션 사장 C씨도 "주말에 예약 2건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없다"며 "아직 단수는 되지 않았지만, 손님들에게 물을 아껴 써달라고 부탁하고 있고 저 역시 변기 물까지 아껴가면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강원 영동은 올해 들어 이달 26일까지 누적 강수량이 예년 같은 기간의 51.3%에 불과하다. 특히 강릉은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44% 수준에 그친다.
비 소식이 간절하지만 영동 지역 강수량은 당분간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부지방 서쪽에서 발달한 비구름대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약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기압에 현재 예상보다 남쪽, 특히 강릉시 남쪽에 중심을 두고 이동한다면 저기압의 반시계 방향 바람 흐름에 따라 동풍이 강하게 불면서 영동 쪽에 더 많은 비를 내릴 수 있다.
(강릉=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tae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