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 명칭을 원래대로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꾸기로 한 건 심상치 않다. 의회 동의와 입법 절차가 필요하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고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일단 보조 명칭으로 전쟁부를 쓸 수 있게 됐다. 이미 미 국방부는 전쟁부란 이름을 공문 등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정부 조직 관련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최강대국 군사 담당 부처가 150년 넘게 썼던 원래 이름을 되찾는 것이다. 미국은 건국 이후인 1789년 전쟁부를 창설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명칭을 바꿀 때까지 숱한 전쟁을 치렀다. 전쟁부란 이름은 미국만 썼던 게 아니다. 2차 대전 전까진 일본, 영국, 프랑스 등 많은 열강에 전쟁부가 있었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 대전의 상흔이 쓰라렸던 주요국들은 대규모 전쟁이 재발해선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따라 각국 작전 개념도 공세에서 방어로 전환했고, 대부분 나라들이 국방부 명칭을 쓰면서 대세가 됐다.

하지만 다시 세계사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듯하다. 미국이 전쟁부란 이름을 부활한 건 필요시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더 명확히 한 것으로 읽힌다. 세계 모든 나라 군사력을 합쳐도 이길 수 없다는 미국의 행보가 달라지면 우방이든, 적이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군사 패권이 강조되며 국제사회 긴장도가 올라갈 수 있고 전쟁부란 이름을 다시 찾는 나라가 더 생길지도 모른다. 앞서 2017년 프랑스도 방어 개념의 국방부란 명칭을 버리는 대신 군(軍)을 강조한 '군무부'로 되돌아갔다.

인류 지성들이 말한 대로 인간의 사고는 평소 쓰는 언어에 갇힐 수밖에 없다. 용어 변경은 단순히 말 하나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잠재의식 속 시각을 재설정한다. 과거 나치나 사회주의 혁명 전술에서 '용어 혼란', '프레이밍' 등을 중요시한 건 단어 하나가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진보좌파 진영의 언어 왜곡에 영향받은 국방부 명칭을 전쟁부로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전쟁부'라는 용어는 군사력을 공격에 사용할 거라는 명시적 선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세계 주요 긴장 지역에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부 회귀 발표 전부터 이미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란 인식이 투영된 행보를 보여왔다. 최근 군을 투입해 베네수엘라 마약 선박을 타격했고, 앞서 6월엔 전략폭격기와 최신형 벙커버스터로 이란 핵시설을 맹폭했다. 사실 미국만 공격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 등 다른 강대국들도 군사적 위협과 압박을 증폭시켜왔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고, 중국은 대만 해협을 위시한 국경 전역에서 전방위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안보 불안도 커졌다.

이 같은 세계 조류의 변화는 주요 강대국들이 다시 군사 전략 기조를 방어 대신 공세 위주로 바꾸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완곡함과 모호함의 시대는 지고 전선이 뚜렷해지는 전환기가 온 건지도 모른다. 한반도 역시 지정학적으로 대만 해협과 중동 못지않은 화약고라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군에서 즐겨 쓰는 말이 떠오른다. 졸면 죽는다. 우리 안보 당국자들과 군이 정세 변화의 미세한 흐름 하나도 놓치지 않는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할 때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