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종회 회의에 100여명 모인 상황…"30초만 늦었어도 인명사고 날 뻔"

바로 옆 박물관에 국보·보물 800여점 보관 중…노출 문화유산 이송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천만다행입니다. 복도에서 흰 연기를 보고 대피해야 한다고 (회의장에 모인 스님들께) 말씀드렸는데 빠져나올 때 보니 이미 검은 연기가 가득한 상태였어요."(조계종 종무원)

10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국제회의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불은 이날 오전 10시를 넘겨 국제회의장에서 조계종 중앙종회가 제234회 임시회를 개의해 안건을 상정 중인 가운데 발생했다.

복도에 있던 종무원들이 천장에서 흰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소화기와 소화전을 이용해 불을 끄려고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종무원들은 모두 대피해야 한다고 회의장에 알렸고 이 무렵 화재경보기도 울렸다.

당시 국제회의장에는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을 비롯한 승려와 종무원, 취재진 등 100명이 넘는 이들이 있었다.

중앙종회 의장인 주경스님은 "의장석에서 보니 환풍기에서 흰 연기가 고물거리면서 나오고 있었다"며 "불이 났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회의장에서 빠져나오는데 천장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경스님은 "의장석에서 출입문까지 가는 1∼2분 정도 되는 짧은 사이에 연기가 차올라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였고 연기도 한두 모금 마셨다"고 덧붙였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30초만 늦었어도 인명 사고로 이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회의장에 있다가 빠져나온 이들 중 일부는 떨어지는 불똥을 맞거나 가벼운 화상을 입었고 연기를 마시기도 했다. 다행히 심각하게 다친 이들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난 국제회의장은 조계종 총무원 사무실과 한국불교중앙박물관을 겸하는 건물과 나란히 있으며 통로로 연결돼 있다.

불교중앙박물관 수장고에는 국보인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유물을 비롯해 국보 1건 17점과 보물 18건 782점 등 3천100여점의 성보가 보관 중이다. 또 기획전 '호선(毫仙) 의겸(義謙): 붓끝에 나투신 부처님'을 위해 각지의 사찰에서 옮겨온 국보 2건 9점, 보물 5건 9점 등 21건 33점이 전시 중이었다.

진화가 조금만 늦었다면 불교 문화유산도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계종 측은 박물관에 스며든 연기를 배출한 뒤 유리 케이스 등 차단 장치가 없는 상태로 전시된 유형 문화유산 2점(1건)과 비지정 문화유산 6점(1건) 등 8점(2건)을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옮겼다.

다행히 적시에 진화가 완료돼 불이 옆 건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연결 통로를 타고 그을음과 연기가 총무원 사무실 곳곳으로 퍼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등은 인근의 다른 건물로 거점을 옮겨서 업무를 보고 있으며 총무원 내 주요 부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번 화재는 종단 행정에도 당분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