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 개시 2주 지났지만 혼란 지속…가자 당국 "최소 100명 사망"
GHF 고용 美 민간 보안 업체, 이스라엘군과 마찰…"협력 어려워"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을 돕는다며 설립한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 가자지구에서 본격적인 배급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체계를 마련하지 못한 채 인명 피해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GHF와 이스라엘군이 1년 반 넘는 전쟁으로 식량난이 심각한 가자지구의 상황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성급하게 활동을 시작해 운영 상의 결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GHF가 가자지구 남부 라파 등에서 구호품 배급소 운영을 시작한 지난 달 27일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참극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배급소가 문을 연 직후 굶주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GHF와 계약을 맺고 배급소 보안을 책임지던 미국의 사설 보안 업체인 '세이프 리치 솔루션스'(SRS) 직원 40여명은 순식간에 몰려든 인파에 배급소를 방치한 채 현장에서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날 벌어진 혼란의 책임을 두고 이스라엘군과 SRS 측은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놨다.
SRS 대변인은 당시 직원들이 현장에서 철수한 것은 안전 수칙을 준수한 것이었다면서 총격이 벌어진 배급소 외곽 지역의 치안은 이스라엘군의 책임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한 이스라엘 당국자는 SRS의 미국 직원들이 라파 배급소를 버리고 도망가 배급소가 파괴되도록 둔 것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당시 파괴된 배급소는 첫날 혼란의 여파로 아직 다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WSJ은 SRS와 이스라엘군 관계자 모두 사적인 자리에서 서로 협업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첫날 혼란 이후 2주가 지났지만 GHF와 이스라엘군, SRS 등 관계 기관들이 여전히 이 구호체계를 운영할 방법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GHF는 이후로도 배급소 운영을 산발적으로 이어가고 있지만, 이스라엘군이 배급소에 몰려든 가자 주민들을 향해 발포하는 일이 지난 주에만 최소 5차례 발생했다고 WSJ은 전했다.
가자지구 당국은 GHF가 배급소 운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최소 100명이 구호품을 받으러 가던 중 살해당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하마스가 구호품을 탈취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지난 2월 설립한 GHF 재단은 유엔 등 국제기구들을 배제하고 주도적으로 구호품을 배급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GHF에 대해 잘 아는 소식통들은 이 프로젝트가 애초에 가자지구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한 채로 시작됐다고 WSJ에 말했다.
현재 GHF는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프 고문이었던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 조니 무어가 이끌고 있다.
GHF의 활동이 충분한 준비 없이 '급조'됐다는 정황도 전해지고 있다.
보안업체 SRS의 한 직원에 따르면 SRS는 당초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연초 합의한 휴전기간 동안 가자지구의 넷자림 통로의 치안을 지키는 일을 하도록 미국과 카타르에 고용된 업체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3월 휴전을 파기하고 전쟁을 재개하면서 계약이 갑작스럽게 끝나게 됐고, 올해 봄에서야 GHF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면서 SRS 측은 이 일을 할 인력을 급하게 구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초기 혼란과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GHF는 계속 가자 구호 활동을 이어가면서 배급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까지 GHF가 가자지구에서 배급한 구호품은 상자로 약 23만2천800개 분량이라고 이 단체는 밝혔다.
그러나 가자지구 주민들은 GHF의 무질서한 운영 방식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 2주 동안 GHF가 가자지구에서 운영하는 배급소 네 곳 중에서 단 한 곳만 문을 여는 날도 있었으며, 일부 배급소가 문을 여는 날에도 하루에 단 45분만 운영하고 구호품이 다 떨어졌다며 문을 닫기도 한다고 전했다.
GHF가 배급소 운영 시간을 공지하는 페이스북과 왓츠앱 채널 등에는 아랍어로 "넷자림에서 오전 6시에 배급을 시작한다고 해놓고, 오전 4시 30분에 배급이 끝났다고 한다. 신뢰도가 0%다"라며 들쭉날쭉한 운영 시간에 항의하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최근 라파의 배급소를 방문했다는 압둘라 주다(24)는 WSJ에 "어쩔 땐 우리에게 이따가 다시 오라고 말해놓고, 이후에는 오늘은 더 이상 배급이 없다고 한다. 그래 놓고 또 다시 2시간 뒤에 문을 열겠다며 말을 바꾼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wisef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