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부게시판에 자조·비판 글…수사관 "조직 방향성 논의 위한 전국 수사관 회의" 요구
검사들 "야근하며 수사한 어리석음 반성"·"막장 개악"·"사법작용에서 행정기능 전락"
검찰청 폐지를 뼈대로 하는 정부 조직개편안을 두고 검사뿐 아니라 검찰 수사관들 사이에서도 '1년 뒤 우린 어디로 가냐'며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조직의 방향을 논의할 전국 수사관 회의를 열어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 조직 전체가 동요 속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수도권의 한 수사관 A씨는 9일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검찰 수사관들을 위한 논의를, 검찰 조직의 방향을 위한 논의를 검찰 구성원들끼리 나눠야 한다"며 "조속히 전국 수사관 회의를 열어주시기를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A씨는 "검사도 아니고 일개 말단 공무원일 뿐이지만 검찰청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현재 검찰 조직을 둘러싼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이웃사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정말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는 "저희는 노조도 없고 직장협의회도 없다. 검찰이 해체되면 도대체 1년 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해야 한다"며 "수사를 하고 싶어 수사관이 됐는데 앞으로 수사를 할 수도 없어 8년간 소중히 여겨온 검찰 수사관이란 직업을 빼앗겨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2021년 검수완박 사태 당시 서울중앙지검에선 전국 수사관 회의가 열려 우리 검찰 수사관들이 올바른 검찰을 위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목소리를 냈던 기억이 있다"며 전국 수사관 회의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지난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남부지검 수사관들 모습을 보며 "우리는 시키는 대로, 규정대로 공무원으로서 일을 열심히 했는데 왜 범죄자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걸까.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왜 국회의원들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하고 검찰 수사관을 범죄자로 전 국민 앞에 낙인찍으셨는지 묻고 싶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선 검사들의 반발 목소리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자조가 섞인 항의성 글부터 강한 비판 글까지 다양하다.
이주훈(사법연수원 38기) 대전지검 형사3부장은 이날 이프로스에 "나는 그동안 주제넘게 수사권을 남용해 국민을 괴롭힌 것을 반성한다"고 썼다.
그는 과거 특수상해 혐의로 송치된 사건을 보완수사하는 과정에서 자해 사실을 밝혀낸 경험을 소개하면서 "더 빨리 억울함을 벗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지금 이뤄지는 (검찰개혁) 논의에 비춰봤을 때 3년 전 내가 벌인 오지랖과 주제넘은 수사권 행사는 반성해야 하는 이유가 된 것 같다"며 "노산에 임신성 당뇨로 인해 야채로 연명하던 시절에 적극적인 자세로 야근까지 해가면서 수사랍시고 행한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한다"고 꼬집었다.
정유미(30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지난 검수완박 이후 대부분 사건 수사가 장기 표류 중이고 검사와 경찰 모두 무익한 절차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으며 당사자들은 사건의 장기화로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끝까지 밀어붙이는 막장 개악의 길을 걷고 있다. 이쯤 되면 진짜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인가 하는 의심까지 드는 판"이라고 비판했다.
과거 검수완박법 대응 TF에서 일했던 차호동(38기) 대전지검 서산지청 부장검사도 전날 "건국 이래 사법 작용이었던 범죄 수사 기능은 결국 준사법기관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정 기능으로 전락했다"며 "제가 책임지지 않은 범죄 수사에 대해 제가 뭐 하러 혼신의 힘을 다해 공소 유지를 하나. 증거 부족하다 싶으면 부담 없이 다 공소 취소하겠다"고 반발했다.
앞서 대통령실과 정부, 민주당은 고위당정협의회를 거쳐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을 뼈대로 하는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공포 1년 후 시행된다.
(서울=연합뉴스) 이밝음 이미령 기자 brigh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