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각도호텔서'타도 제국주의'구호 떼내 15년형 선고후 의문의 뇌사상태로  

웜비어 北여행서 죽음까지


 '타도 제국주의로 튼튼히 무장하자.'

 2016년 1월 1일 오전 2시경 평양을 찾은 미국 공립 명문 버지니아대 3학년인 오토 웜비어는 숙소인 양각도호텔 '종업원 구역'에서 이런 구호를 발견했다. 북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빨간색으로 칠한 나무판에 흰색 글씨로 쓰인 구호였다. 웜비어가 해당 구호의 뜻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그것을 뜯어 복도에 내려놓았다. 이 행위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양각도호텔 5층은 외부인 접근이 차단돼 있으며 이곳엔 보위성 요원들이 상주하면서 호텔 내 1000여 개의 객실을 도청하고 감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뒤 출국하려던 웜비어는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순안공항에서 북한 당국에 연행됐다. 제국주의를 타도하라는 구호판을 떼어낸 웜비어의 즉흥적 행동은 '체제 전복 시도'로 둔갑했다. 결국 그에겐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했다. 

 웜비어가 3박 4일 일정으로 북한 여행길에 오른 것은 21세 생일을 맞은 지 보름쯤 지나서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미지의 국가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북한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한순간에 전도유망한 한 청년의 운명은 그렇게 갈렸다.

 전교 차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고, 무도회나 동창회에서 '킹카'로 미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북한을 방문하기 전엔 에콰도르와 쿠바를 여행한 적도 있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북한은 웜비어가 식중독 치료 과정에서 수면제를 복용했다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전문가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은 과거 미국인들을 억류했을 때 고문을 가하진 않았다. 대체 웜비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사자는 말없이 떠났고 사인은 미궁에 빠졌다. 웜비어는 기자회견 당시 이렇게 말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양에 와서 보십시오. 그러면 제 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1년 뒤 그의 죽음으로 전 세계는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똑똑히 목격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