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화제]

미국 입양→학대→감옥살이→한국 추방…아담 크랩서씨 '기구한 삶'
교도소서 미용배워 자립했지만 전과탓 영주권 재발급 못받아 쫓겨나
생모 "같이 살았어야…너무나 미안", 아들 "매일 엄마가 그리웠어요"
베트남계 아내와 두 딸은 미국에 남아…"엄마 성으로 개명 데려올것"

 "Mom, I miss you every single day(엄마, 매일 보고 싶었어요)."

 "엄마가 너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굶어 죽더라도 같이 살았어야 했는데…."

 지난 18일 오후 5시쯤 경북 영주시 외곽의 한 한옥 주택. 37년 만에 상봉한 모자(母子)는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한참을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비록 엄마는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아들은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말은 안통했지만 '혈육의 대화'는 통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어머니 권필주(61)씨와 아들 아담 크랩서(41·한국명 신성혁)씨는 가난 때문에 생이별했다. 권씨는 어렸을 적에 침을 잘못 맞아 왼쪽 다리가 마비됐다. 알코올중독자였던 권씨의 아버지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한 남자에게 딸을 줬다. 권씨는 1년 후쯤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딸과 두 아들을 낳았다. 성혁이 둘째였다.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집을 나가 생계가 막막해진 권씨는 막내아들은 자식이 없는 집에 맡기고, 성혁과 큰딸은 충북 제천의 보육원에 보냈다.

 매체에 따르면 성혁과 한 살 터울인 누나는 1979년 3월 초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사는 라이트 부부에게 입양됐다. 아담은 양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다 1986년 파양(罷養)됐다. 누나와도 헤어졌다. 이후 고아원과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 1987년 오리건주의 크랩서 부부에게 입양됐지만 이곳에서도 얻어맞으며 살았다. 

 크랩서 부부는 아담 외에도 다른 입양아들을 학대하다 주정부에 기소를 당했다. 아담은 16세였던 1991년 크랩서 부부에게 쫓겨나 1년여를 차에서 살았다. 

 18세 무렵엔 양부모의 집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한국 고아원에서 가져온 고무신과 인형, 한글 성경책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양부모는 귀중품이 없어졌다고 아담을 고발했다. 아담은 주택침입죄로 25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엔 길거리 생활을 하다 차량 절도 등의 범죄로 19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그는 교도소 안의 미용학교에 등록해 기술을 배웠고, 출소 후엔 이발소를 열어 자립했다.

 아이 셋을 둔 가장(家長)이 된 아담은 2012년에 영주권 재발급을 신청했다가 신원 조회 과정에서 전과가 드러나 추방 재판에 넘겨졌다. 양부모들은 그의 영주권 신청은 해줬지만 시민권 신청은 하지 않았다. 미국이 입양인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한 것은 2000년부터였다. 양부모들이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은 탓에 그는 미국에서 40년이나 살고도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미국인으로 살아왔으면서도 영주권 갱신을 하지 못해 불법 체류자가 된 그의 사연은 지난해 한국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법원은 얼마 전 그에게 최종 추방 명령을 내렸다.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아담은 지난 18일 영주에 있는 생모(生母) 권씨를 만났다고 신문은 전했다. 권씨는 아들에게 떡볶이·잡채·불고기 등을 먹였고, 아들을 곁에서 재웠다. 권씨는 "아들이 내 귀, 볼을 만지면서 소리 없이 울더라. 나도 모른 채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울었다"고 말했다. 아담은 "미국 워싱턴주에 사는 베트남계 아내와 두 딸을 한국으로 데려와 엄마와 같이 살고 싶다. 엄마 성(姓)인 권씨로 개명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