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러 협의 거친 수정안 내일 표결…초안보다 후퇴한 절충안 
블랙리스트 대상 5명→1명…석유제품 수출 연간 200만 배럴로 제한

(서울·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김연숙 기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11일 오후(현지시간, 한국시간으로는 12일 오전) 표결에 부칠 신규 대북제재 결의안이 당초 알려진 초안보다 후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미국이 주도해 만든 안보리 결의안 초안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처음으로 제재 명단에 올리는 것을 포함해 대북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 금지 등 초강력 제재안이 망라돼 있었으나 러시아, 중국과의 물밑협상 결과 이보다는 완화된 내용이 담겼다고 AFP·교도·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10일 보도했다.

AFP와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당초보다 완화된 내용으로 결의안 최종안을 마련해 현지시간으로 10일 오후 늦게 안보리 회원국들에 회람시켰으며, 11일 오후 표결에 부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종안에서는 개인·단체 제재대상 명단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이름이 삭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미국이 공개한 결의안 초안은 북한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 위원장의 실명을 처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시선을 끌었다. 제재대상이 되면 해외 자산이 동결되고 해외여행이 금지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중·러 방문까지 차단된다.

김 위원장의 해외 은닉재산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제재는 실질적 효과보다는 상징적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됐었다.

특히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최고 책임자로 적시해 사실상 전범(戰犯)으로 낙인찍겠다는 의도로 해석됐으나 중국과 러시아 측의 반발로 결국 이 내용은 최종안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초안에서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등 총 5명이 제재 명단에 포함됐지만, 최종안에는 제재대상이 단 1명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또 초안에는 북한 정부, 노동당, 인민군, 당 중앙군사위, 고려항공 등 총 7개 기관도 제재대상에 추가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북한 유일의 항공사인 고려항공은 제재 명단에서 빠졌다.

북한 해외노동자 수출과 공해 상의 북한 선박 강제검색 관련해서도 내용이 다소 완화됐다.

미국은 북한 해외노동자에 대한 고용과 기존 노동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등 '전면금지'를 추진했으나, 최종안에는 신규 고용 시 안보리에서 허가를 받는 방안으로 바뀌었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 이전에 고용이 확정된 북한 해외노동자에 대해서는 12월 15일 이전에 안보리에 통보해야 한다.

이는 최대 이해당사자로 여겨지는 중국과 러시아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최소 5만 명 이상이 연간 12억 달러에서 23억 달러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득은 북한 정권의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여겨진다.

선박 검색과 관련, 미국이 만든 초안에는 안보리가 제재를 위반했다고 규정한 화물용 선박에 대해 192개 유엔 회원국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운항을 금지하고 수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는 기국(선박 국적국) 동의가 있을 때, 금수품목을 싣고 있다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는 정보가 있을 때 공해 상에서 검색하도록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또, 제3국산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거쳐 수출하는 경우 제재 적용을 제외하는 기존 규정을 삭제하려했으나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기존 안보리 결의 2270호에서는 북한산이 아닌 제3국산(러시아산) 석탄의 북한 나진항을 통한 수출을 예외로 인정했었다.

김정은 자산동결과 함께 북한의 '생명줄'을 끊는 조치로서 가장 관심이 쏠렸던 대북 원유 금수 조치 역시 삭제되고, 대신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방안으로 절충된 것으로 전해졌다.

석유 제품 역시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방안 대신 상한선을 두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원유수출에 대해서는 연간 상한을 설정해 이전 12개월의 수출량을 초과해서 안 된다고 명기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원유 수출량은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으로 상한을 뒀다"고 전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현재 북한은 연간 최소 50만t∼최대 100만t의 원유를 중국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전면 수출 금지안에 반대함에 따라 대북 원유 공급량을 실질적으로 줄이도록 하는 수준에서 접점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또 석유 제품 수출과 관련해서도 교도통신은 "북한에 대한 모든 석유 정제품의 공급과 수출을 합쳐 연간 200만 배럴(약 30만t)로 제한하고 가맹국에 대한 수출량 등을 매달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며 "천연가스액과 천연가스 부산물의 경질원유 응축액의 수출도 금지된다"고 전했다.

다만 북한의 섬유제품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은 애초 초안에 담긴 내용이 그대로 포함됐다. 섬유는 석탄 등에 이어 북한의 주력 수출상품 가운데 하나로 연간 수출액이 약 7억5천200만 달러(약 8천500억원) 규모다.

결의안 최종안은 "(북한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긴장완화 노력을 촉구한다"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을 강조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당초 '초강력 제재안'으로 평가됐던 핵심 내용 상당수가 후퇴 또는 완화된 수준으로 절충되면서 이번 제재안이 실질적으로 북한을 얼마나 옥죌 수 있는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표결은 한국 시간으로 12일 오전에 행해질 예정이다.

결의안이 채택되려면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영국 등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상황에서 15개 상임·비상임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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