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대통령, 1993년 1월 취임일 전직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집무실에 남긴 편지 공개

[뉴스인뉴스]

▣편지 내용
"부당하게 느껴지는 비판 힘들것
비판에 낙담 말고 갈길을 가라
당신의 성공이 곧 나라의 성공"

▣클린턴의 조지 평가
"정치보다 사람, 당파보다 애국심
서로 다른 견해에 마음을 연 그는
우리가 공유하는 미래를 믿었다"


지난 30일 타계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1990년대 이래 30여 년간 미국에서 유일하게 재선을 못한, 마지막 단임 대통령이다. 파벌 경쟁이나 대중 선동, 이미지 정치와 거리가 멀었던 그는 뜨거운 대중적 인기를 누리질 못했다. 그런 그는 청중을 열광시키는 연설 능력에다, 정력적이고 잘생긴 40대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과 맞붙은 1992년 대선에서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걸프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에 발목이 잡힌 부시 전 대통령은 결국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클린턴 선거 캠프의 대선 슬로건에 조롱당하며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클린턴 퇴임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한 우정을 과시했고 이는 미 정치사에 좋은 본보기가 됐다.

클린턴은 타계한 부시 전 대통령이 1993년 1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며 후임인 그에게 남긴 편지를 1일 공개했다.

클린턴이 이날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밝힌 당시 편지를 보면, "친애하는 빌에게"로 시작하는 이 손편지는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책상 위에 놓여졌다.

부시의 편지 전문은 이렇다.

"친애하는 빌. 나는 지금 집무실에 들어오면서, 4년 전 느꼈던 것과 같은 경이와 존경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도 느끼게 될 겁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몇몇 전임 대통령들이 묘사했던 외로움을 결코 느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매우 힘든 날을 겪게 될 것이고, 부당하게 느껴지는 비판으로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조언자는 못 되지만, 그런 비판 때문에 용기를 잃거나 정도를 벗어나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가족들도 이곳에서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성공이 바로 나라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굳건히 지지하겠습니다. 행운을 빌며-조지."

70대가 된 클린턴은 WP 기고에서 "나나 누군가의 어떤 말로도 부시가 쓴 이 메모만큼 그의 인품을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다"면서 "그는 명예롭고 자애로우며 품위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과 우리의 헌법, 제도,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미래를 믿었다. 그는 승리하건 패배하건 간에 그런 가치를 수호하고 강하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2004년 아시아 지역 쓰나미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를 위한 모금 운동 등 국가 대사에 함께 손잡고 나섰다. 부시의 한 측근에 따르면 22세 차이인 두 사람의 애정이 워낙 돈독해 부시의 자녀들이 클린턴을 질투할 정도였다.

한때 정적이었던 두 사람의 '우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클린턴은 "사람들은 우리의 우정을 신기하게 생각한다"며 "우리는 많이 달랐지만, 나는 그의 업적 중 냉전 종식 같은 외교 성과나 정파를 초월한 교육 정책 등에 경의를 표한다. 무엇보다 부시는 정치 싸움에선 거칠 때도 있었지만 거기엔 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치보다 사람을, 당파보다 애국심을 앞세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달라도 괜찮다는 사실만큼은 동의했다. 솔직한 토론은 민주주의를 더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클린턴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현재 미국과 세계의 정치 환경을 언급, "부시가 속해 있던-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아니고, 서로 다른 견해에 마음이 열려 있으며, 사실이 가치를 지니며, 우리 자녀의 미래를 위해 타협하고 진보하던-결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한숨짓게 된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부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슨 소리야, 그런 미국을 되찾아오는 게 당신 임무야'라고 할 것"이라고 끝맺었다.


조지 H W 전 대통령(오른쪽)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2005년 2월 20일 쓰나미 피해를 입은 동남아 지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