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혐의 재판중이던 인도네시아 여성에 말레이 검찰, 이례적 기소 취하
[뉴스분석]

印·북한 등 우방국 관계 회복 고려한 듯
"사건'사실'검증보다는'외교'선택했다"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독극물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사진)가 11일 말레이시아 검찰의 기소 취소로 전격 풀려났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이례적으로 취소 이유를 일절 밝히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속적으로 '아이샤는 북한 정보기관에 이용당한 무고한 희생자''며 석방을 요구해왔다"면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그런 요구와 해당 사건으로 단교(斷交) 위기까지 갔던 대(對)북한 관계 회복 등을 고려해 이번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법무장관은 지난 8일 아이샤에 대한 기소를 취소하는 서한에 서명했으며 이에 따라 1심을 맡은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별도 선고 없이 이날 오전 아이샤를 석방했다. 아이샤는 변호사와 함께 재판정을 떠나면서 기자들을 향해 "오늘 아침에야 석방될 것이란 소식을 들었다. 매우 놀랍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이샤는 곧장 인도네시아로 귀국했다.

아이샤는 베트남 국적 여성 도안 티 흐엉(31)과 함께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 청사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로 쓰이는 신경 작용제 VX를 묻혀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흐엉은 스프레이로 독극물을 뿌렸으며, 아이샤가 김정남 얼굴에 손수건을 덮었다. 당시 아이샤와 흐엉에게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

아이샤와 흐엉은 이 북한인들을 TV 오락 프로그램 제작자로 알았으며, 몰래 카메라 촬영을 위해 장난을 치는 것으로만 알고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말레이시아 검찰은 2017년 3월 두 사람을 고의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동안 언론들은 이 두사람의 살인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재판 중 기소 취소라는 이례적 방식으로 석방이 이뤄진 것이다.

아이샤의 석방 배경과 관련해 이날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이샤 석방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 고위급 접촉의 결과"라고 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에 이어 법무장관, 경찰청장을 잇따라 만나 아이샤 문제를 논의했다. 외교 소식통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결국 김정남 사건의 '사실' 검증보다는 '외교'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김정남 암살이 자신들 소행임을 전면 부인하는 북한도 비공식적으로 말레이시아 정부 측에 아이샤 선처를 요구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고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베트남 국민인 흐엉을 김정남 암살 사건에 연루시킨 것에 대해 베트남 정부에도 비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베트남은 당시 북측의 사과에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었으나 남북 대화 국면에 이어 최근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북한과 관계를 개선했다.

베트남 국적 공범 女
충격 속 석방 가능성

한편 공범 흐엉에 대한 재판은 오는 14일 속개된다. 흐엉은 무죄를 주장하며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크에 빠졌다. 내 머리가 하얘졌다"며 당혹스러워했다고도 한다. 흐엉의 변호사는 "흐엉이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아이샤만 석방된 것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낙담하고 있다"고 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해당 사건을 사실상 덮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흐엉 역시 조만간 석방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