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분석 /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베이징 중관춘'의 明과 暗

[중국]

장시간 근로 등으로 "30세 되기 전 번아웃"
9시 출근 9시 퇴근 주 6일간…'996 스케줄'
평균 근속 2.6년, 미국보다 되레 훨씬 짧아

매일 80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나는 등 차세대 실리콘밸리로 주목받는 중국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에서 젊은 직원들이 격무 등으로 인해 "잠도, 섹스도, 삶도 없이"지낸다며 "30세가 되기 전 번아웃(burnout)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0일 보도했다. 평균 근속연수도 미국과 비교해 1년 이상 짧다. 세계 최고 인재와 기업, 자금을 빨아들여 미 실리콘밸리의 아성에 도전한다는 중관춘의 화려함 뒤에 숨은 이면인 것이다.

SCMP에 따르면 중관춘은 '실리콘밸리로부터 배우고, 실리콘밸리를 복제하라'는 미션을 갖고 탄생한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로 레노버, 바이두, 샤오미, 디디추싱 등 대륙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유 하오란(26)은 이곳에서 2014년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밤낮없이 일해 2억 위안(약 337억원)의 가치로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그가 얻은 건 만성 불면증이다. 그는 "때로 두 시간밖에 못 잔다"고 말한다.

인터넷 회사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있는 33세의 양 씨 부부는 맞벌이다. 둘 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퇴근한다. 양 씨는 최근 몇 달간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평일엔 성관계하기에 너무 고단하다고 말한다. SCMP는 "수십만 명의 젊은 기술산업 근로자가 직면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기술 회사는 직원들이 장시간 근무를 통해 헌신을 보여주길 바란다"는 게 SCMP의 설명이다. '996 스케줄'이 대표적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매주 6일간 이어진다는 말이다.

SCMP에 따르면 현지 언론에서 원인을 과도한 업무량으로 보는 젊은 기술직 근로자의 사망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15년 3대 IT 공룡 중 하나인 텐센트의 개발자 리준밍이 임신한 부인과 산책을 하던 도중 숨졌다. 드론 회사인 DJI의 25세 직원 역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무료 식사와 셔틀 서비스, 체육관 운영 등 미국의 구글·페이스북 못지않은 복지 혜택조차 생산성을 위한 족쇄 같다고 직원들은 말한다. SCMP는 "(복지가) 일과 개인 삶의 경계를 더 모호하게 만든다"며 "그들은 '착취당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회사로부터 무료 매니큐어, 마사지 서비스까지 받는다는 26세의 왕 씨는 "고용주는 당신 삶의 모든 문제를 덜어주고 싶어한다"며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일만 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직원 복지가 근로자들을 더 오래 머물게 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판 링크드인인 마이마이에 따르면 미국(3.65년)과 달리 중국 기술기업(국영 통신사 제외)의 평균 근속연수는 2.6년이 채 안 된다.

전반적인 경기하강의 영향으로 노동 강도가 더 심해진 측면도 있다. 돈줄이 마르고 채용이 줄면서 장시간 근로를 강요당한다는 얘기다. 각종 지원을 통해 첨단 산업을 육성하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공격적 '중국제조 2025'프로젝트 등이 야기한 부작용이란 분석도 있다.

그래서 중국 내부적으로도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