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심사에서 '사직 요구' 등 사실관계는 상당 부분 인정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조만간 소환…피의자 신분 검토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김은경 전 장관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기로 가닥을 잡고 청와대의 인사개입 의혹을 쫓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27일 검찰 등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는 지난 26일 기각된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고 일단 불구속 수사하기로 했다.

검찰이 영장 심사에서 3개월에 걸쳐 수집한 수천 쪽에 달하는 증거를 제출했음에도 법원이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만큼 김 전 장관의 신병에 대해서는 법원 판단을 존중하고 청와대 개입 여부를 수사하는 데 주력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이 같은 방향은 현 상황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으로, 향후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장관의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거나 증거인멸 정황 등이 새로 포착되면 영장이 재청구될 가능성도 있다.

법원은 김 전 장관의 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 된 사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법원이 '환경부 블랙리스트'라는 프레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검찰은 동요 없이 청와대 '윗선' 개입 의혹을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구속영장 심사에서 나온 판단이 그대로 기소 후 본안 판결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어 법원의 이번 판단에 지나치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검찰은 법원이 위법성 평가 단계에서 이견을 보이면서도 기초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 판단에서는 검찰 주장이 일정 부분 인정된 점에 주목한다.

법원은 김 전 장관의 영장 청구 기각 사유를 밝히면서 환경공단 임원에게 사직서를 청구하거나 특정 인사를 특혜 채용하려 한 행동이 위법인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사직 요구나 특혜 채용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환경부 관계자들의 개입이 어느 정도 인정됐다고 보고 이 부분이 향후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될 수 있도록 법리를 더 탄탄하게 다지는 동시에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 관여한 청와대 인사들을 조만간 소환할 계획이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인사 중 첫 소환자는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 비서관은 청와대가 내정한 인사가 한국환경공단 임원 공모 과정에서 탈락하자 안병옥 당시 환경부 차관 등을 청와대로 불러 질책하는 등 인사에 개입한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검찰은 신 비서관을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발되지 않은 신 비서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혹 상태가 아니라 구체적인 혐의가 포착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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