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기자회견 자청 "한 사람 면담하다가 신체접촉…사죄"

피해자, 사건 직후 사퇴 요구 "인생 송두리째 흔든 성범죄"

동남권 신공항 등 주요 현안 차질 우려…1년간 행정 공백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수 아성을 무너뜨리며 3전 4기 신화를 만든 주인공 오거돈 부산시장이 한 여성 공무원을 강제 추행한 사실을 인정하며 전격 사퇴했다.

피해 여성은 "명백한 성범죄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오거돈 충격에 지역 노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분노의 성명을 쏟아냈고, 시민들도 오 시장의 페이스북을 찾아가 깊은 배신감을 표출했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오 시장은 경찰 내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부산시정은 보궐선거일인 내년 4월까지 행정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 오거돈 "한 사람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머리 숙여 사죄"

오 시장은 23일 오전 11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는 "죄스러운 말씀을 드린다. 저는 최근 한 사람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고 강제추행으로 인지했다"며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이어 "저의 행동이 경중에 상관없이 어떤 말로도 용서받지 못할 행위임을 안다"며 "이런 잘못을 안고 부산시민이 맡겨주신 시장직을 더 수행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했다.

오 시장은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남은 삶을 사죄하고 참회하면서 평생 과오를 짊어지고 살겠다"며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다"며 흐느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 후 부산시의회에 사임통지서를 제출했고, 지방자치법에 따라 사임통지서는 바로 효력이 발생했다.

◇ 시장 집무실에서 강제 추행…피해 여성 사퇴 요구

부산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4월 둘째 주 시장 집무실에서 오 시장으로부터 '심각한 추행'을 당했다.

집무실을 빠져나온 피해 여성은 부산성폭력상담소를 찾아 피해를 알렸다.

오 시장은 추행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또 시 정무 라인을 통해 피해 여성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피해 여성은 자신의 피해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4월 말 이전 사퇴할 것과 사퇴 이유에 '강제 추행' 사실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피해 여성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집무실에서 있었던 일은 명백한 성추행이고,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성범죄였다"며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번 사건은 '오거돈 시장 성추행'이다"며 "피해자 신상정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고 제 신상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 일체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 경찰 내사 착수…민주당, 오 시장 제명 방침

부산경찰청은 오 시장이 밝힌 성추행 사실관계를 확인해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엄정 조치할 예정이다.

경찰은 전문성을 가진 여성·청소년 수사팀과 피해자 케어팀 등을 통해 피해자 보호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오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 외에 구체적인 성추행 시점이나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강제추행 등 성범죄의 경우 2013년 형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전면 폐지됐다.

피해자가 합의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의사 표명과 별개로 처벌이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오 시장 징계 절차에 착수, 24일 윤리심판원을 열어 제명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부산시당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분들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 이같이 불미스러운 일로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드린 것에 고개 숙여 사죄하며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은 오 시장이 자신의 사퇴 시점을 총선 이후로 의도적으로 조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부산시정 1년 공백…대표 공약사업 줄줄이 차질 예상

오 시장이 추진하던 굵직한 사업들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1호 공약으로 내세운 '동남권 신공항'은 당분간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해신공항(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한 총리실 검증 결과 발표가 늦어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 추진 동력이 시들해졌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오 시장 사퇴로 결정적인 한 방을 맞은 모양새다.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식수원 해결을 위해 경남과의 협력이 필수인 맑은 물 확보와 동남경제권 조성과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도 흔들리게 됐다.

북항 재개발사업과 연계한 원도심 재생과 경부선 철도시설 재배치와 철도 지하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후속 사업, 부산 금융중심지 추진 등도 걸림돌을 만났다.

오 시장 퇴진에 따른 보궐선거는 내년 4월 치러질 예정이어서, 부산시정은 1년간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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