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수비대, 바이든 시대 앞두고 대미 메시지 발신 가능성

이란, '수출대금 동결 불만' 관측 부인…외교차관, 예정대로 10일 이란 방문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국적 선박 억류는 한국과 이란간 최근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양국간 갈등 사안이었던 한국 내 동결된 이란의 자금을 백신 구매에 활용하는 쪽으로 협의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던 데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의 이란 방문 직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통상 고위급 인사 교류는 양국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져가는 계기가 되는데 선박 억류는 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치로, 한국보다는 한국의 동맹인 미국을 겨냥한 조치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5일(한국시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억류 사태는 한국과 이란 외교 당국이 최 차관의 테헤란 방문을 다음 주 초 진행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인 상황에서 벌어졌다.

AP통신 등 외신도 전날 이란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한국의 고위급 외교관이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 동결 사안을 논의하고자 수일 내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최 차관은 이란 측과 동결된 수출대금 활용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으로, 일각에서는 이란이 한국 측과의 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한국 선박을 억류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란 측은 이런 의혹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이날 외교부에 초치된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는 "완전히 기술적인 사안"이라며 해당 선박에 대해 해양오염과 관련한 고소가 이란 해양청에 들어와 사법 절차를 개시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동결자금 문제는 백신 구매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조율이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어 이란 측이 이 문제로 한국을 압박할 필요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란 내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혁명수비대가 아무런 의도 없이 단순히 기술적 문제로 한국 선박을 억류했을 것으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기술적 문제'가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란 대사는 해당 선박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법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한국 측에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선박의 선사는 "공해상에서 발생한 데다 환경오염도 일으키지 않았다"며 무혐의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억류 사태는 이란이 한국보다는 미국을 겨냥해 감행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살해된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 1주기를 맞아 미국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오는 20일 조 바이든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데, 혁명수비대를 주축으로 한 이란 강경파가 전환기를 맞은 미정부에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을 수도 있다.

이란은 그간 자국에 대한 제재를 주도해 온 미국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해 왔다.

2018년 5월 이란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한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하고 한국이 이에 동참하면서 결국 한국-이란 간 교역 중단 책임도 미국에 있다고도 보고 있다.

동시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제해권'도 과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걸프 해역 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3분의 1이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란은 미국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해협 봉쇄를 위협했고, 여러 차례 선박을 나포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가 이란이 한국 국적 선박을 억류하자 즉시 억류 해제를 요구하며 반응을 보인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으로 읽힐 수 있다.

정부는 현재 이란 측 의도를 정밀 분석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향후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 내 일각에선 한국 선박 억류 사태로 최 차관의 이란 방문이 취소되는 것 아니냐는 기류도 있었지만, 계획대로 추진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차관이 이란을 방문했음에도 억류 사태에 진전이 없으면 이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였는데, 그가 방문해 동결자금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는 게 억류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 차관은 오는 10일부터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다.

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