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한인 여성 일가족 사망 사건, 사건 발생 보름 지나도록 사인 '미스테리'

[이슈분석]

부부와 딸, 애완견 북가주 하이킹 코스서 변사체
남가주 살다 도시 생활 정리하고 자연 찾아 이주
등산로 인근 보금자리 마련 네 식구 행복한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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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집에 아무도 없다” 도우미 실종 신고
경찰 수색끝에 인근 등산로서 모두 숨진 채 발견
총기 등 외상 흔적 없고, 극단적 선택 단서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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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 녹조류, 유독 가스 중독 사망 가능성 희박
셰리프 “아무런 단서 안나와…이런 사건은 처음”
한달 후쯤 나오게 될 최종 부검 결과 실낱 희망

한인 여성을 포함한 일가족 3명과 반려견이 북가주 시에라 국유림 하이킹 트레일에서 숨진채 발견된지 보름이 다 되도록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북가주 마리포사 카운티 세리프국은 시에라 국유림 게이트 인근에서 이들의 차량을 찾아낸 후 이어 세명의 시신도 발견했다.

사망자는 올해 31살 앨런 정과 45살 남편 존 게리쉬 그리고 이들의 한살배기 딸 미주양이다.

또한 이들 가족의 반려견도 죽은 채 발견됐다.

그런데 숨진 이들의 시신에는 외상의 흔적이 전혀 없고 사인으로 추정할만한 흔적이나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이번 사건의 개요를 정리해봤다.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부부

30대의 오렌지카운티 출신 한인인 앨런 정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문직에 종사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올해 40대 중반인 남편 존 게리쉬씨는 세계적인 기업 구글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다. 등산을 너무 좋아한 부부는 한 살난 딸 미주양, 그리고 반려견 ‘오스키’ 등과 함께 최근 마리포사 카운티로 이사 왔다.

마리포사 카운티는 LA에서 북쪽으로 5시간쯤 떨어진 곳으로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시에라 국유림 등 천혜의 자연으로 이름난 지역이다. 이 곳에 등산을 왔다가 대 자연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 가족은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대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를 결정했다.

마리포사 카운티 중심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한 등산로 가까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부부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으로 주변에 집들도 몇채 구입해 임대사업도 시작했다. 대자연을 만끽하며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생활이었다.

자동차와 사체 따로 발견

지난 16일 밤 11시쯤 마리포사 카운티 셰리프국에 이 가족의 실종 신고가 들어왔다. 부부의 아기를 돌보는 도우미가 이날 부부의 집에 와보니 아무도 없었고 저녁때까지 기다려 봐도 연락이 안 된다며 신고한 것이다.

실종 신고를 받은 셰리프국은 즉시 이 부부의 집 근처에 있는 등산로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3시간여만에 새벽 2시쯤 등산로 한쪽에 주차된 부부의 차를 발견했다. 차 안엔 아무도 없었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셰리프는 즉시 지원을 요청했고 곧바로 수색 구조대가 출동했다.

인근을 샅샅이 뒤진 구조대는 9시간쯤 뒤 부부의 차에서 1.5마일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발견했다. 부부와 딸, 그리고 반려견까지 모두 숨진 상태였다.

휴대전화 통화 기록 단서 無

남편은 앉은 자세였고, 아기는 남편 옆에서 누운 채였다. 아내는 조금 더 위쪽 언덕에 있었다.

가족들이 차로 돌아오던 중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셰리프국에 따르면 이들의 죽음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가족들에게서 총기나 둔기 또는 사고로 추정될 만한 외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뱀에 물린 상처도 벌에 쏘인 자국도 발견되지 않았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찾았지만 사건 현장은 전화 연결이 안 되는 곳이라 구조 요청 기록은 없었다.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도 조사해봤지만, 유서나 독극물 등 어떤 단서도 없었다.

부부는 너무 사이가 좋았고 경제적 문제도 없었다. 주변에서 원한을 살만한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셰리프국은 휴대전화의 통화 및 위치 이동 기록을 확인했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유독성 가스 중독’ 사인 제외

셰리프국은 일단 몇가지 가능성을 놓고 사망 원인을 추정했다.

우선 산책로 근처 강에서 보고된 독성 녹조류에 의한 사고사를 조사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 산림청은 사건 현장 부근 강에서 유독성 녹조가 발견됐다며 수영이나 물놀이 애완동물에게 물을 마시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인근 폐광에서 나오는 유해 가스도 이들의 사망 원인이 됐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사건 현장에서 3마일 가량 떨어진 폐광에서 일산화 탄소가 유출돼 접근이 차단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셰리프국은 일단 사건 현장을 유해 물질 발생 위험 지역으로 지정하고 접근을 차단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밀폐된 공간이 아닌 야외에서 사망자들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유독가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정했다.

결국 유독성 가스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배제됐다. 숨진 가족 주변에서 추가로 발견된 동물 사체가 한 구도 없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했다.

가족들이 등산을 갔을 당시 날씨가 화씨 100도가 훨씬 넘는 폭염이었지만 그들에게 물이 남아있어 탈수나 열사병에 의한 사망 가능성도 없었다.

 ■ ‘녹조류 독성 물질’ 의심

셰리프국이 현재 가장 의심하는 사망원인은 근처 강에서 확인된 녹조류의 독성 물질일 가능성이다. 등산로 부근 강 주변에서 발견된 녹조류 박테리아가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왔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와 관련된 사망 보고는 거의 없었지만 전문가들은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종류는 '시아노 박테리아(Cyanobacteria:남조류 )'로 만약 개가 박테리아로 오염된 물을 마시면 충분히 치명적일 수 있다. 문제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냐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박테리아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충분한 농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박테리아의 독성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물통에 물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부부가 오염된 물을 마셨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채집된 박테리아 샘플의 독성 조사 결과는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을 수사중인 마리포사 카운티 셰리프 관계자는 “사건 발생 2주가 지나도록 사망 원인이 될만한 단서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사당국은 앞으로 한달 후쯤 나오게 될 최종 부검결과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과연 그 무엇이 이들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이번 사건은 점점 더 깊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