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 교황의 '평신도 직무' 수여 영예 

[이·사·람]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학 김나영씨
 말씀 전례 때 성경 낭독하는 역할 맡게돼

역사상 처음으로 한인 여성이 교황으로부터 평신도 직무를 수여받아 화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3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하느님의 말씀 주일' 미사를 집례하고 사상 처음으로 평신도에게 직무를 수여했다.

교황은 2019년 9월 자의교서(Motu proprio·교황 문서)를 통해 가톨릭 절기로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제정했다. 신자들이 성경을 더 경건하고 친숙하게 대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제정 이후 세 번째인 이 미사에서는 전례 없는 특별한 예식이 있었다. 교황이 주례한 평신도 직무 수여식이다.

교황은 소정의 절차를 거쳐 선정된 전 세계 남녀 평신도 16명에게 독서직 또는 교리교사직을 수여했다. 평신도의 국적은 이탈리아, 가나, 파키스탄, 페루, 브라질,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등으로 다양하다. 직무를 받은 이들 중에는 여성도 다수 포함됐다. 독서직 8명 가운데 6명이, 교리교사직에선 8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이날 직무 수여식에서는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 신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나영(38)씨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했다. 독서자로 선정된 김씨는 예식에서 교황을 마주한 채 한글로 된 성경을 받았다.독서직은 말씀 전례 때 성경을 낭독하는 역할을 하며, 작년 5월 공식 직무로 인정받은 교리교사직은 예비 신자의 교리 교육 등을 담당하는 직무다.

세례명이 '심포로사'(Symphorosa)인 김씨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미사를 앞두고 너무 긴장한 탓인지 목덜미가 아파 파스까지 붙였다고 했다.

로마 시내에 있는 여성 신학원 '산타 체칠리아 콜레지오'에서 기거하는 김씨는 기숙사 생활을 돕는 사감 교수의 추천으로 원우 4명과 함께 독서자로 선정됐다. 사감 교수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전례에 참여하는 김씨의 모습을 눈여겨 봐왔다고 한다.

모태신앙인 김씨는 나이에서 보듯 늦깎이 유학생이다. 일반대에 진학했다가 졸업 후 신학대학원으로 방향을 틀었고, 급기야 가톨릭의 본향인 로마에까지 오게 됐다.

신앙심 깊은 부모님의 정신적인 지원도 신학대학원 진학과 로마 유학의 큰 디딤돌이 됐다.

부모님은 남들이 선호하는 번듯한 직장을 갖기보다 신학을 공부해 교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그의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고 한다. 

이번 평신도 직무 수여가 교회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고 개인에도 영광스러운 일임이 틀림없지만 김씨는 이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변함없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봉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올해 학부를 마치고 곧바로 석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인 김씨는 "공부를 마치고 무엇을 할지 방향을 정하거나 목표를 가진 적은 없다. 어딘가 쓰일 곳이 있으면 쓰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