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의회, 돈바스 파병 승인…바이든 "추가 도발시 더 센 제재"

우크라 정부, 대러 제재 환영…돈바스선 정부군-반군 공방 지속

점점 닫히는 '외교의 창'…24일 미·러 외무장관 회담 전격 취소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서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분쟁지역 돈바스의 독립 승인과 뒤이은 군 파견 결정을 '침공'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제재에 착수했다.

러시아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 등 주요 은행의 대외 거래가 막혔고 독일과 직결되는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2'는 가동 직전 승인이 보류됐다.

러시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돈바스 평화협정인 민스크협정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의회로부터 돈바스에 대한 파병을 공식 승인받았다.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신냉전 기류까지 감지되는 가운데 외교적 돌파구로 희망을 걸었던 24일 미·러 외교장관 회담은 전격 취소됐다.

◇ "이것은 침공" 제재 나선 서방

미국은 22일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군대를 파병하기로 한 러시아의 결정을 침공으로 규정하고 러시아 은행 등에 대한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VEB와 방위산업 지원 특수은행인 PSB 및 42개 자회사가 서방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게 막고 이들에 대한 해외 자산도 동결하기로 했다.

미국은 전날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행보를 침공으로 선뜻 부르지 했지만 하루만에 기류가 강경하게 변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의 행위는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이라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1차 제재라고 언급하며 러시아가 추가 도발을 하면 제재의 수위를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도 이날 로시야은행, 프롬스뱌지은행, 크림반도 흑해은행 등 주요 은행과 신흥재벌 등의 역내 자산동결과 거래금지 등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독일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러시아에서 발트해를 통과해 독일로 직결되는 이 가스관은 독일이 2012년부터 공들여 추진해 왔으나 완공 후 승인을 앞둔 상태에서 사업이 중단됐다.

독일은 천연가스 공급 차질을 우려해 이 가스관을 제재 대상에 넣는 데 미온적이었으나 결국 러시아 제재를 위해 이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도 돈바스 독립 결정에 투표한 러시아 의회 의원과 국영은행 등에 대한 은행 거래를 막겠다고 밝히며 미국과 유럽의 제재 행렬에 동참했다.

서방의 좀 더 과감한 조치를 촉구해 온 우크라이나 정부는 환영의 뜻을 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서방의 제재에 대해 "정치적, 도덕적으로 알맞은 조치"라고 반겼다.

그는 특히 가스관 승인 중지 결정을 내린 독일을 언급하며 "진정한 리더십은 어려운 상황에서 힘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 '직진'…돈바스 파병 준비 끝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 대해 '예상된 수순'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돈바스 지역 공략을 단계적으로 밟아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상원으로부터 해외 파병 승인을 받았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최근 독립을 승인한 돈바스 지역의 DPR과 LPR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권한을 공식 부여한 것이다.

앞서 푸틴은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한 뒤 국방부에 러시아군을 파견해 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미 러시아와 두 자치 공화국은 상호 협력 조약도 체결했다.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의 교전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모습을 보였다.

관영 통신은 "푸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재 방안을 발표하는 연설 중계를 보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돈바스 무력분쟁 해결을 위해 2015년 체결했던 민스크 평화협정은 오래전에 이미 사멸했다고 밝히고 이는 순전히 우크라이나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직은 러시아군을 돈바스로 보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돈바스에는 러시아군이 진입해 있다는 말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 등 서방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접경지에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 등장했던 부대 표식이 없는 군복을 입은 군인들인 '리틀 그린 맨'들의 모습이 다시 목격되고 있다.

◇ 우크라 돈바스는 이미 전쟁터…외교는 '멈춤'

돈바스에선 17일 이후 정부군과 반군간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루간스크주 스차스티예 지역에선 22일 발전소가 포격으로 파손돼 인근 전기 공급이 끊겼다.

도네츠크 지역에서는 방송국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러시아 매체들은 23일 자정 무렵 도네츠크TV 센터 구역에서 폭발물이 터졌다고 보도했다.

DPR 반군은 이로 인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정부군의 테러행위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DPR 측은 정부군이 이날 도네츠크 공격에서 지난 2018년 이후 처음으로 다연장 로켓포를 사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예비군 동원령을 발동하고 휘발유의 부가세를 인하는 등 본격적인 대비 태세에 나섰다.

미군은 동유럽 작전지역에 F-35 전투기와 AH-64 아파치 공격 헬기를 추가로 배치하고 발트해 지역에는 보병 800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외교의 창은 거의 닫히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4일 예정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회담은 의미 없다는 판단에서다.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