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경기 거부·국제대회 취소…親푸틴 음악 거장도 공연 못 올라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세계 스포츠, 공연·예술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며 잇따른 보이콧과 징계 조치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거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부과한 데 발맞춰 체육·문화계도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는 흐름이다.

◇ 유럽 국가들 "러시아와는 축구 안 해…침략 규탄"

27일(현지시간) 국제축구연맹(FIFA)은 러시아의 국제 경기 개최, 국가명·국기·국가 사용 금지하는 징계를 내렸다.

FIFA는 이날 "러시아에서 국제 경기를 개최할 수 없고, 러시아의 홈 경기는 중립 지역에서 무관중 경기로 치른다"며 "러시아 선수는 러시아 국가명 대신 러시아축구협회(RFU) 소속으로 뛰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문제와 엮이는 것을 극히 꺼리는 FIFA의 정책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러시아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플레이오프(PO)에서 맞붙게 될 가능성이 있던 폴란드, 스웨덴, 체코의 각 축구협회도 러시아와 경기를 잇달아 거부했다.

체코축구협회는 27일 "월드컵 PO에서 러시아와 어떤 경우에도 경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날 스웨덴축구협회도 홈페이지를 통해 "남자 대표팀이 월드컵 PO에서 러시아와 맞붙게 될 경우 경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칼-에리크 닐손 스웨덴축구협회 회장은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축구 교류가 불가능해졌다"며 "FIFA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러시아와 경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폴란드도 같은 이유로 러시아와 월드컵 PO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3월 24일 폴란드와 월드컵 유럽 예선 PO 준결승을 치를 예정이었다. 이 경기에서 이기는 팀은 스웨덴-체코전 승자와 3월29일 결승에서 대결하는 대진이었다.

FIFA가 신속히 징계에 착수하긴 했지만, 징계 수위가 충분치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번 징계대로라면 무관중이고 국기·국호·국가만 사용할 수 없을 뿐 경기는 그대로 진행돼서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도 27일 러시아와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이 결정이 모든 연령별 대표팀에 적용된다고 밝혔다.

7월 영국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선수권대회가 예정됐고 러시아는 이 대회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프랑스축구협회 역시 27일 프랑스 매체와 인터뷰에서 "러시아를 월드컵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 '올림픽 휴전 중 전쟁이라니'…IOC, 모든 분야에 보이콧 촉구

이런 '러시아 거부' 움직임은 스포츠 모든 분야로 확산 중이다.

침공 다음 날인 25일 IOC 집행이사회는 각 연맹에 러시아나 벨라루스에서 예정된 스포츠 행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집행이사회는 러시아가 '올림픽 휴전 결의'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올림픽 휴전 결의는 올림픽 기간 중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고대 그리스 전통을 기념해 1993년 이후 2년마다 올림픽 직전 연도에 채택됐다.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는 193개 회원국의 합의에 따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7일 전(1월 28일)부터 패럴림픽 폐막 7일 후(3월 20일)까지 휴전 기간을 선포했다.

국제배구연맹(FIVB)과 국제체조연맹(FIG), 국제유도연맹(IJF)은 IOC의 요청에 호응해 올해 러시아에서 열기로 한 대회를 취소했다.

FIG와 IJF가 평화를 강조하며 러시아에서 열기로 한 모든 대회를 취소하고 강경하게 맞섰지만 FIVB는 여론에 떠밀려 어정쩡한 태도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FIVB는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며 애초 8월에 러시아에서 열기로 한 세계남자선수권대회를 강행하려다가 거센 비판 여론을 받자 6∼7월 러시아에서 개최할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만 취소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세계선수권대회 취소는 상황을 주시한 뒤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밖에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 대회 포뮬러원(F1)을 주최하는 세계자동차연맹(FIA)도 25일 성명을 통해 올 시즌 F1 월드 챔피언십의 러시아 그랑프리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IJF는 2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예회장·명예대사 자격을 정지했다.

◇ '親푸틴 예술가, 거장이라도 안 돼'…서방, 공연 줄줄이 취소

공연·예술계도 푸틴 대통령과 친하거나 지지를 표했던 인사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분위기다.

25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은 오후 8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 세계적 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를 무대에서 내리고 조성진을 투입했다.

이들 두 러시아 음악가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한 이력이 있어서다. 이 중 게르기예프는 거장이지만 푸틴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자 친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게르기예프는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에서도 퇴출 위기에 직면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 회장인 주세페 살라 밀라노 시장은 게르기예프에 이번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명확한 지지를 내지 않으면 3월 예정된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을 지휘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시 게르기예프에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25일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도 올여름 예정된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유럽 최대 음악 축제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유로비전)의 주최 측인 유럽방송연합(EBU)도 올해 행사에서 러시아 참가자의 공연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EBU는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전례 없는 위기를 고려할 때 올해 행사에 러시아를 참여시킬 경우 유로비전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pual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