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나흘 앞두고 지지율 56%…두테르테 딸도 유력, '독재가문 어벤져스' 

[필리핀]

"1960년대 집권시절 경제 고도 성장" 재연 기대  
극악 독재 경험못한 젊은층 유권자들 사로잡아  

필리핀의 독재 정치와 폭력적 행태를 상징하는 두 가문이 오는 9일 열릴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다. 이들 가문의 대표 선수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64) 전 상원의원과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시 시장. 각각 대통령-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로 출마한 이들은 과반의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집권이 예상된다.

'마르코스'와 '두테르테'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마르코스는 1965년부터 21년간 7만여 명의 민주화 요구 인사를 투옥시키고 정적까지 암살했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다.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민간인 6,000여 명을 살해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를 받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이다.

'독재가문 어벤져스'로 불리는 필리핀 대통령 선거가 오는 9일 치러진다.

현 여당 소속인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필리핀 여론조사 기관 펄스아시아가 지난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그는 56%를 얻었다. 2위는 현 부통령 레니 로브레도 후보로 1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를 얻는 데 그쳤다. 복싱영웅 매니 파키아오 후보는 7%에 불과했다. 

러닝메이트가 아니라 별도로 선출하는 부통령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 후보가 55%로 2위 빈센트 소토 후보(18%)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차기 필리핀 정권이 ‘독재자 2세들의 어벤져스’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스트롱맨 리더십에 대한 염증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바탕이 되고 있다. 그는 민중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를 구축했다. 동시에 아버지 집권기인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1965년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 필리핀은 6·25전쟁 특수를 발판 삼아 1960년대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로 꼽혔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필리핀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후 야당과 소수민족, 무슬림 등을 탄압하는 등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1986년 피플파워 혁명으로 축출돼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사망했다. 하지만 마르코스 가문의 부는 유지됐고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도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의 밝은 면만 강조한다.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 고문 등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주장은 모함이라는 온라인 허위 선전을 틱톡, 유튜브에 퍼트리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나 피플파워 혁명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 젊은층은 이들의 선전에 넘어가고 있다.

한 선거전문가는 “중하류층과 해외 송금에 의존하는 빈곤층이 마르코스 지지층의 핵심”이라며 “미국의 ‘트럼프현상’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엘리트들이 희망을 주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