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이코노미스트 분석…"핵 없는 나라는 얻으려 하고, 있는 나라는 위협 나설 것"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 위협으로 인해 인류는 이미 새로운 핵질서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일(현지시간) 진단했다.

러시아가 실제로 핵을 쓰지 않더라도 서방에 대해 핵 위협을 관철하는 모습을 본 여러 나라가 핵무장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0일 전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면서 서방에 핵 위협을 가했다.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푸틴의 경고에 우크라이나 지원 준비에 나설 채비를 하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서방은 러시아와 직접적인 충돌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실제로 핵을 떨어트리지 않더라도 이미 그는 국제사회의 핵 질서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우선 안보 취약국들은 우크라이나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핵보유국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핵무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소련 시절 배치했던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와 미국, 영국 등지로부터 안보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돈바스 친러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하면서 그 약속을 깨버렸다. 이를 방관한 미국과 영국도 약속을 어긴 것은 마찬가지였다.

강대국에 당하지 않으려면 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일부 독재국의 논리가 강화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이란도 그리 길게 지속되지도 못할 서방의 신뢰를 얻으려고 핵을 포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핵을 어떻게든 갖는 것이 과거보다 힘들지 않을 수 있다고 여기게 될 수 있다.

이란이 핵실험을 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며, 한국과 일본 등 핵무장을 할 능력이 있는 국가도 이렇게 위험해진 세상에서 서방의 핵우산 약속에 대한 믿음을 계속 견고히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핵보유국들의 경우 푸틴의 핵 위협 전술을 따라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확실히 서방은 푸틴의 위협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언제, 어디서 핵 위협이 현실이 될지 알 수 없게 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핵전쟁의 위험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고조돼 왔다.

북한은 이미 수십개의 핵탄두를 개발한 것으로 추정되고, 이란은 첫 핵폭탄을 만드는 데 충분한 농축 우라늄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파키스탄도 빠르게 무기고에 핵무기를 채우고 있고 중국은 핵 전술을 현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핵확산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억제해 온 핵무기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을 약화하게 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우려했다.

과거엔 미국과 소련이 양자 간 핵 위협을 하고 말았다면 이제는 핵보유국이 너무 많아진 측면도 있다.

이와 함께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치르고 있는 재래식 전투에 도움을 주고자 핵 위협을 활용하는 것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를 지켜본 중국도 대만을 공격하면서 핵 위협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래식 전쟁과 결합된 핵 위협은 여러 국가가 무장에 더욱 골몰하게 만들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등을 통해 핵무기 감축에 나서던 핵보유국들이 핵무장 해제에 대해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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