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결과·사건 처리에 불만 품은 범죄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9일 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변호사 사무실 화재가 재판에서 진 남성의 '화풀이 방화'라는 추정이 나오면서 법조계에서는 끊이지 않는 '보복 테러'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날 사건 현장에서는 용의자가 민사 소송에서 진 뒤 상대편을 대리한 변호사의 사무실로 몇 차례 항의 전화를 걸었다는 관계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경찰이 확인한 CC(폐쇄회로)TV 화면에선 용의자가 이날 오전 흰 천으로 덮은 미확인 물체를 한 손에 들고 건물에 들어서는 모습이 찍혔다. 검찰은 이 천에 덮인 물체가 인화 물질이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판결이나 사건 처리 결과에 불만을 가진 당사자들이 법조인을 상대로 '테러'를 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7년 8월에는 이완용 후손의 재산권 소송 승소와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사면 소문에 불만을 품은 한 사람이 수원지법 성남지원장실에 난입해 지원장의 팔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는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는 정신병력이 있는 인물로 밝혀졌고, 피해자인 지원장은 충격을 못 이겨 법복을 벗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사건인 '판사 석궁 테러'(2007년 1월)는 유명한 사례다.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복직 소송의 항소심 재판부에서 패소 판결을 내리자 당시 박홍우 부장판사에게 석궁으로 화살을 쐈고, 이 일로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급기야 2018년에는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의 차를 향해 화염병이 날아드는 사상 초유의 테러까지 벌어졌다.

검사나 변호사들이 폭력에 노출된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08년 광주지검에서 사건 처리에 반발한 민원인이 공구로 부장검사를 공격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일로 청사 안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으나 지난해에는 같은 건물에서 흉기 난동도 발생했다.

2015년에는 '전관예우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고검장 출신인 박영수 변호사(전 특별검사)를 습격한 60대 건설업자가 붙잡히기도 했다. 흉기에 맞은 박 변호사는 목에 상처를 입고 봉합수술까지 받았다.

그보다 한해 전에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60대의 방화로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이 전소됐고, 2012년에는 법원의 조정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당사자에 의해 변호사와 직원들이 사무실에 감금당한 사건도 벌어졌다. 장기 미제 사건인 1999년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도 수임 사건에 대한 관련자의 불만이 원인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생명까지 잃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 벌어져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며 "법원과 검찰청은 보안 관리가 강화됐다지만 언제 있을지 모를 위협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힘들 것이고, 변호사 사무실은 애초에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라 '운에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한 일선 검사는 "법적 결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불신하고 보는 분위기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더 강해진 것 같다"고 우려하며 "불공정한 사건 처리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체 등을 통해 불신을 부추기는 풍조도 문제"라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특별조사위원회를 발족하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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