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로 자금 모아 쇼핑몰 운영할 정도로 열정적"

"지켜줬어야 했는데…" 멈추지 못하는 아버지의 흐느낌

(대전=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부모가 죄인이죠. 아빠가 지켜줬어야 했는데…"

만 스무 살에 주검으로 돌아온 막내딸을 떠올리며 아버지는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흐느껴 울었다.

3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A씨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 건양대병원 장례식장 곳곳에서는 통곡과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3남매 가운데 막내인 딸은 영정사진 속 밝은 미소처럼 가족들에게 늘 웃음을 주던 막내였다.

아버지는 지난 29일 낮 설거지하던 본인의 등 뒤로 서울에 다녀온다고 평소처럼 밝게 외치며 집을 나서던 딸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걸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내 새끼가, 낮에 나갔던 내 새끼가, 밤에 사람에 깔려 죽었어요. 지난 토요일 이후로 내 인생이 바뀌었어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그는 잠을 자고 있던 30일 새벽에 거실에서 아내가 큰 소리로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사태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내가 서울에 함께 갔던 딸의 친구에게서 "00이가 이태원에서 사람들한테 깔렸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아내는 "텔레비전 좀 봐봐. 사고 났대. 저기 우리 00이가 누워있대"라며 통곡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첫 기차를 타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 앞에 있는 남대문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고 딸 휴대폰 위치추적을 신청했다.

실종자 가족 대기 장소인 한남동주민센터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순천향대병원에도 가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발만 동동 굴렀다.

30일 오후 1시께 송탄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고 달려간 송탄 한 장례식장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딸의 모습을 마주했다.

"우리 애 얼굴이 주먹만 해요. 장례식장 냉동실에서 나온 우리 애 얼굴이 요만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리던 아버지는 다시 흐느꼈다.

열정도 많고 꿈도 많았던 딸은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닐 정도로 춤을 좋아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옷에 관심이 생겨 대학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해서 서울에서 패션디자인 공부를 했던 딸이다.

아르바이트하며 사업 자금을 모아 올해부터 본인의 목표였던 의류 쇼핑몰을 시작했다.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본인 손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딸애가 혼자서 모델도 되고 사진도 직접 찍어가며 쇼핑몰을 운영했어요."

친구들도 A씨를 '꿈이 많던 친구'로 기억한다.

"늘 하고 싶은 게 많은 친구였어요. 저희한테 언젠가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 거라고 자주 말하곤 했는데, 한다면 하는 친구라서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친구로서 뿌듯했어요."

친구들은 그런 A씨의 열정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

"아직도 거짓말 같아요. 진짜 믿어지지 않아요… 지금도 같이 까르르하며 놀 것 같은데…"

고인의 아버지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진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깔려 죽을 수가 있어요. 이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따지고 싶지는 않아요. 죽은 내 새끼가 살아 돌아오지도 않을 텐데…"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만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아버지 휴대폰 배경 화면에는 이제는 볼 수 없는 딸이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딸 참 예쁘죠? 진짜 너무 예뻐…"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스무 살 딸의 미소를 보는 부모는 애잔한 마음을 달랠 길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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