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에게 삭제 지시도 안 해…국정원, 정책 결정 부서 아냐"

"개혁된 국정원, 더는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말라"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박재현 기자 =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연루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검찰에 출석했다.

이날 오전 9시 50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한 박 전 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어떠한 삭제지시도 받지 않았다"며 "원장으로서 직원들에게 무엇도 삭제하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첩보·정보를 수집해 분석한 뒤 대통령께 보고하고 안보실이나 통일부, 국방부 등을 지원하는 것이 국정원 본연의 임무"라며 "(국정원은) 정책 결정 부서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은 당시 정보 분석이 완벽하지 않아 이씨의 '자진 월북' 단정이 성급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애국심과 헌신을 가지고 일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자세를 존경하고 신뢰한다"며 "분석관의 분석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국정원 직원들이 업무를 제대로 했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보안은 전 세계 정보기관의 제1 업무"라며 서 전 실장의 보안 유지 지침을 첩보 삭제 지시로 보는 검찰 시각을 반박했다.

당시 국정원은 서해 피격 사건이 공개될 경우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비난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서 전 실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원장은 이 같은 보고서 작성 취지를 묻자 "그러한 것을 얘기하는 것은 국정원법 위반"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검찰에서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은 검찰이 정치적 수사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도 했다.

그는 "오늘 저를 조사함으로써 개혁된 국정원을 더는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저는 국정원을 개혁하러 왔지 삭제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검찰과 감사원을 겨냥해선 "병폐가 가장 피부로 느껴지는 곳"이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이후 이 사실을 은폐할 목적으로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로 올해 7월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씨 피격 다음 날인 그해 9월 23일 새벽 1시 관계 장관회의가 열린 뒤 첩보 보고서 등 46건의 자료를 무단 삭제했다.

검찰은 박 전 원장이 이 회의에 참석한 뒤 서훈(구속 기소) 전 실장으로부터 보안 유지 지시를 받고 보고서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조사에서 박 전 원장이 어느 정도로 첩보 삭제에 관여했는지 등을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전날 소환 조사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신병 처리 방향도 함께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2vs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