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살해의 고의 인정돼"…1심 무죄→2심서 유죄로 뒤집혀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자신의 집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내연녀에게 적절한 구호 조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국토연구원 전 부원장 A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대전고법 형사3부(정재오 부장판사)는 17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A씨는 선고 직후 법정에서 구속돼 수감됐다.

A씨는 2019년 8월 16일 오후 11시20분께 세종시 한 아파트 자신의 거주지에서 의식을 잃은 내연 관계 직원 B씨를 3시간 후에 밖으로 데리고 나온 뒤 다시 4시간 넘게 차량에 태운 채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를 뒤늦게 병원 응급실에 데려갔으나, B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처음 쓰러졌을 당시만 해도 자가호흡이 가능해 A씨가 119에 신고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 시간이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A씨 거주지에서 인근 119 안전센터까지 거리는 1.4㎞(5∼10분 거리)에 불과했다.

그는 B씨를 차량 뒷좌석에 짐짝처럼 집어 던진 뒤 국토연구원 주차장에 도착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쓰러진 지 7시간여 만에야 병원 응급실로 갔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직원이 쓰러진 것을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폐소생술까지 시행됐지만 이미 시반이 형성된 시각이었다. A씨는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병원에서 오열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집 안에서 구토한 뒤 의식을 잃고 코를 골았다는 A씨 진술로 미뤄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상태가 위중하다는 판단을 못 했을 가능성이 있고, (구호 조처를 안 한 행위와) B씨 사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항소했다.

2심은 "피해자가 의식을 잃었을 때 119에 신고해 응급실로 옮겼더라면 살 수 있었음에도 그대로 방치해 사망의 결과를 초래했다. 내연관계가 발각될 것이 두려워 은폐하려고까지 했다"며 1심을 뒤집고 중형을 선고했다.

A씨 측은 "내연관계는 아니었고 숙소에서는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다. 잠을 자는 줄 알았다"며 살해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 재판부는 "확정적 예견 가능성이 없었더라도 미필적 살해의 고의를 인정하기 충분하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이날 "아쉬운 점은 있으나 항소를 준비할 것"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j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