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지 떠나보내고 울음바다…노숙 처지 몰리고 생필품 부족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튀르키예(터키) 동남부 카흐라만마라슈 시내의 축구 경기장은 거대한 이재민 대피소로 바뀌어 있었다.

무너진 집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곳곳에 친 천막, 칼바람을 버티려 피운 모닥불 등으로 채워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서 언제 축구 경기가 열렸을지를 떠올리기조차 어렵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강진 발생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피해 지역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추위와 슬픔에 고통받고 있는 생존자들의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하룻밤 사이에 폐허가 된 카흐라만마라슈는 이전의 일상을 찾아보기 불가능할 정도로 도시 구석구석이 재난의 상처로 신음하고 있었다.

수많은 관람객이 흥겹게 떠들던 축구장은 이재민 대피소가 됐고, 실내체육관은 시신이 늘어선 안치소로 쓰이고 있다. 얼굴을 가린 모포를 들춰보고 얼굴을 확인한 이들은 이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임시 장례식장 빈소처럼 된 마을 소방서에도 고인을 떠올리며 흐느끼는 유족과 친지가 수없이 많다.

이 소방서에는 지진이 발생한 지난 6일부터 총 200구의 시신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날 오전에만 49구가 새로 도착했다.

보통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서 먼저 시체를 닦는 염습을 하지만, 이번과 같은 자연재해 상황에서는 이런 절차를 제대로 거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처참한 사고 당시의 모습 그대로 마지막 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는 망자를 바라보는 가족과 지인들의 애간장이 끊어진다.

이날 한 가족이 친척 시신 6구와 함께 파자르즈크 마을 소방서에 도착했다. 가장 어린 이는 15살,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90세였다. 한 여성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 시신에 덮여있던 천을 들추고 이미 숨진 부모의 발에 마구 입을 맞췄다.

이들과 함께 온 엠레 토크괴즐리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모두 폐허가 돼 있었다"며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시리아 접경지인 남부 하타이주(州) 지역의 상황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NYT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본 이곳의 한 도로에서는 표지판, 전봇대, 건물 할 것 없이 땅 위에 서있는 모든 것들이 다 기괴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애초 골목길 위로 팽팽하게 당겨놨을 빨랫줄은 한쪽 건물이 무너져내린 탓에 45도 각도로 늘어진 상태였다. 거리 곳곳은 여행가방을 들고 서성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구호단체들은 빵과 기저귀, 옷, 신발 등 생필품이 담긴 상자를 쉼없이 나르며 노숙자 처지가 된 주민들에게 나눠주기에 분주했다.

레제프 타이이안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카흐라만마라슈 축구장에 마련된 대피소를 찾아 가족당 약 530달러(약 66만8천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대재난에 직면했다"며 "우리나라가 다시금 인내를 보여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NYT는 오는 5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미 수십억 달러를 퍼다 쓴 튀르키예 정부에 실제 얼마만큼의 재정 여력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NYT는 "많은 주민에게는 겨울 코트와 장작을 어디서 구할지, 집으로 돌아가도 안전한지, 자동차 히터를 틀기 위해 주유를 할 수 있을지, 친척들이 존엄한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가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미국의 민관 합동 재난관리기구 '태평양재난센터'(PDC)의 추산을 인용해 이번 지진으로 2천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추산을 내놨다. 튀르키예 당국은 자국 내 이재민이 약 1천350만 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