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출신지역 등 비하…함께 밥 먹던 친구들 모두 떠나 외톨이

지난해 9월에도 스마트폰에 극단적 선택 암시 메모 작성

수첩에는 '담임도 호소 외면' 글…부모 "학폭방지시스템 전혀 작동 안 해"

(천안=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충남 천안에서 고등학교 3학년인 김상연(18) 군이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글을 남기고 사망한 가운데 김군은 고교 진학 직후부터 내내 괴롭힘을 당했고,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군의 수첩에는 1학년 초부터 숨지기 전까지 당한 일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김군은 주 가해자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A군을 지목했다.

김군은 수첩에 '악마 같은 XX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괴롭힌 만큼 돌려받았으면 좋겠어. 아니, 몇 배로…'라고 적어 A군과 가해자들을 향한 증오심을 드러냈다.

수첩 글에 따르면 A군은 1학년 초부터 김군의 얼굴을 향해 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행동을 해왔다.

김군이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A군은 이후에도 그런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계속 얼굴을 들이밀었다.

초반에만 해도 김군은 A군에게 직접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욕설뿐이었다.

학급 친구들도 김군에 대해 '팔이 짧다'거나 '몸 모양이 이상하다'고 외모를 비하하고, '게이 웹툰을 본다'며 무시하는 발언을 거듭했다.

김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몰래 사진 찍어 누리소통망(SNS)에 올리기도 했다.

김군이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발기된 것을 본 친구가 학교에 이를 소문냈다는 내용도 수첩에 적혀 있었다.

김군이 중학교까지 다른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을 두고 비하 발언을 일삼고, A군은 "널 명예 천안인이라고 불러줄게"라며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2학년 2학기가 되자 따돌림은 더 심해졌다.

A군과 친한 친구들이 주도적으로 김군에 대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옷을 계속 입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따돌리기 시작했고, 특정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다 봤다고 하자 그마저도 트집 잡아 놀려댔다.

신발이 학교에서 사라지고, 누군가가 김군의 태블릿 컴퓨터에도 손을 댔다. 친구에게 볼펜을 빌려줬지만 쉽게 돌려받을 수 없었다.

김군의 꿈이 경찰이라는 사실도 놀림거리가 됐고,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애가 한 명 있다'고 면박을 당했다.

그러던 중 김군은 자신을 제외한 학급 단체 메신저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함께 밥을 먹던 친구들이 점차 없어지다 한 명만 남더니 결국 그 친구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멀어져, 김군은 완전히 외톨이가 됐다.

3학년이 된 뒤 김군은 담임교사와 상담 중 용기를 내 따돌림 이야기를 꺼내고 연관된 학생들을 지목했다.

담임은 다른 학생들 상담을 모두 마친 뒤 김군을 다시 부르겠다고 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괴롭히던 아이들은 김군을 아예 모르는 척 행동했고, 출신지를 무시하며 비하하는 것은 여전했다.

언젠가 학생들이 갑자기 김군을 배려해주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김군은 '내가 신고하리라 생각하고 (행동을) 바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괴롭히던 학생들은 김군 앞에서 '쌓아놨다가 3학년 때 신고하면 악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군은 수첩 말미에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따돌림받은 시간이 매우 김. 우울증과 불면증 약을 받으려 했지만 건강상의 문제가 있어 심해질까 받지 않음'이라고 적어 장기간 따돌림으로 인한 고통을 내비쳤다.

따돌림이 특히 심했던 지난해 9월 김군이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김군의 스마트폰에서는 지난해 9월 3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죽습니다. 또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두려워서 그냥 포기합니다. 폐 끼친 모두에게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빠 속 썩여서 죄송합니다. 건강하세요'라는 메모가 발견됐다.

김군이 숨진 다음 날인 지난 12일 김군 부모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수첩에 명시돼 있는 학생 7명과 3학년 담임교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지난달 말부터 김군이 어머니에게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자, 부모는 이달 4일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하지만 학교에서는 '학폭이 없었다'고만 하며 아이 상담도 제대로 하지 않고 1주일간 손을 놓고 있었다"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요청했을 때라도 심각성을 알고 대처했더라면 상연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유서에 '000은 악마다. 이 세상에 안 태어났으면 좋겠다. 나 대신 누군가가 걔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처벌을 내려줘요'라는 글이 적혀있다"며 "'누군가'라는 말에서 그동안 아무 조치도 안 이뤄져 힘들어했을 아이가 생각나 마음이 찢어진다"고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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