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 살인·식인한 희대의 미 연쇄살인범 다뤄…남우주연상 등 13개 후보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악명높은 미국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의 범행 행각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가 에미상 다수 후보에 오르자 "유족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15일 미국 연예매체 피플에 따르면 다머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들을 대리했던 변호사 토마스 제이컵슨은 매체에 보낸 성명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가 에미상 13개 후보에 오른 것은 살인범을 미화하고 유족에게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공개돼 시청률 상위권에 오른 '다머'는 1978년부터 1991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일대에서 17명을 연쇄 살인한 제프리 다머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머는 청소년을 포함한 남성만을 노렸고, 살인뿐 아니라 식인, 시간(屍姦) 등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의 범행 장소가 된 아파트를 한 자산가가 통째로 매입해 철거해 버릴 정도였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1994년 다른 재소자에게 맞아 숨졌다.

드라마가 크게 흥행한 데 이어 올해 에미상에서 다머를 연기한 에번 피터스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13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

드라마는 다머의 주요 피해자가 흑인 동성애자이고 범행 장소가 된 아파트가 흑인 빈민가에 있었다는 점을 조명하고, 이웃이 경찰에 거듭 수상한 동태를 신고했지만 무시당했다는 내용을 강조하며 경찰의 선별적 치안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다머의 범행이 상세히 묘사되는데, 어릴 적부터 시체 성애적 성향을 보인 다머를 제때 치료했으면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제이컵슨 변호사는 "제프리 다머 시리즈와 같은 프로그램에 에미상을 수여하는 것은 사회의 폭력과 범죄를 미화하고 이에 둔감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미상 13개 후보에 오르는 등 사건과 관련한 화제가 이어지는 것은 이 괴물의 행동과 동기를 미화하고 유족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이컵슨 변호사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당시 8명의 피해자 유족을 대리해 관련 소송을 진행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사전에 유족의 참여나 동의를 얻지 않았다며, 이는 가뜩이나 상처받은 유족들을 더 힘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제작자인 라이언 머피는 피해자 가족과 친구 20명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다머'에 대해 유족 측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피해자 토니 휴스의 어머니 셜리 휴즈는 지난해 영국 일간 가디언에 "어떻게 그들(제작진)이 우리 이름을 사용해서 그런 내용을 내보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희생자 애롤 린지의 사촌인 에릭 페리는 작년에 트위터를 통해 "이 드라마가 가족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며 이 드라마가 제작된다고 미리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린지의 여동생인 리타 이스벨은 드라마에서 묘사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를 괴롭혔고 당시 느꼈던 모든 감정이 되살아났다"고 지난해 밝힌 바 있다.

드라마에는 법정에서 발언하다 격분해 소리치다 다머에게 달려드는 이스벨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나온다.

제이컵슨은 "드라마의 모든 초점이 살인자에게 맞춰져 있고 아무도 희생자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의 '다머' 담당자는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피플은 전했다.

dy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