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동양인으로는 첫 설치…전 세계의 성인으로 '우뚝'
한진섭 조각가가 1월부터 작업…377㎝ 석상 450㎝ 높이에 모셔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박수현 통신원 =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의 조각상이 5일(현지시간) 전 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졌다.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이 들어선 곳은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 벽감(벽면을 움푹 파서 만든 공간)이다. 전임 교황 대다수가 묻힌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 출구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또한 근처에 바티칸 기념품 가게가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목이기도 하다.
이날 연합뉴스가 찾아갔을 때는 기중기를 이용해 377㎝ 크기의 김대건 신부 성상을 바닥에서 450㎝ 높이에 있는 벽감까지 들어 올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높이를 맞춘 뒤 벽감에 조각상을 밀어 넣는 것으로 설치 작업이 완료됐다.
성상은 현재 천으로 덮여 가려져 있다. 성상에 담긴 김대건 신부는 갓과 도포 등 한국 전통의상을 입고 두 팔을 벌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은 성 베드로 대성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김대건 신부 성상은 갓과 도포 등을 착용하고 있어 주변에 세워진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성인 등 유럽 수도회 설립자들의 성상과 외관이 뚜렷하게 구별돼 전 세계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각상 설치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돌을 기억하기 위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있는 유흥식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히면서 결정됐다.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장 재임 당시 충남 당진의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의 성지화 사업을 주도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방문해 김대건 신부 생가에서 묵상했고, 이곳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24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김대건 신부를 언급하며 전 세계 신자들에게 "한국 순교자들처럼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가 결정되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비용을 지원하고 조각상 제작에 참여했다.
한진섭 조각가가 조각상 제작자로 선정됐다.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한 한 작가는 지난해 8월부터 5개월에 걸쳐 카라라 지역에서 양질의 대리석을 찾아냈다.
이후 지난 1월부터 이탈리아 서북부 도시 피에르타 산타에 머무르며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제작했다.
8개월여에 걸친 작업 끝에 제작이 완료됐고, 조각상은 피에르타 산타에서 400여㎞ 떨어진 바티칸까지 손상 없이 운반돼 이날 설치 작업이 무사히 완료됐다.
한 작가는 "혹시라도 손상이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설치 작업을 지켜봤다"며 "설치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만 알고 있는 김대건 신부를 전 세계에 알린다는 생각 때문에 어깨가 무거웠고,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됐다"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김대건 신부의 뜻과 신앙심, 정신이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대건 신부 성상 축성식은 오는 16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유흥식 추기경이 주례하는 감사 미사를 봉헌한 뒤 열린다.
감사 미사와 축성식에는 주교회의를 대표해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염수정 추기경,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부산교구 총대리 신호철 주교가 참석할 예정이다.
이 행사에 참석하는 공식 순례단은 주교단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게 된다.
1821년 충남 당진 솔뫼의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사제품을 받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가톨릭 사제가 된 인물이다.
천주교 박해가 절정에 달하던 당시 깊은 신앙심으로 활발하게 사목 활동을 하다 관헌에 체포됐고, 1846년 9월 효수됐다.
김대건 신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인 1984년 시성돼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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