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이어 美 정부 일각·시민사회서도 민간인 피해 우려 고조

네타냐후의 공세 일변도·전후 가자 장기 관리 의지도 '두통거리'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지원해온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국내외에서 만만치 않은 반발에 직면한 형국이다.

미국은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스라엘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한 몸'이 되길 자처했다.

개전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한차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3차례(대통령 수행을 제외한 단독 방문 기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미국 수뇌부가 이스라엘 방문 때마다 천명한 제1원칙은 이스라엘 민간인 약 1천200명을 살해한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대응 권리를 인정하고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국제법 준수와 민간인 피해 최소화 역시 계속 언급했지만, 이스라엘에게 하마스를 타격할 권리를 넘어 '의무'가 있다고까지 했기에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했다.

일반적 의미의 '휴전'을 반대한 미국의 입장도 지금 이스라엘의 공세를 멈추면 하마스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갖게 된다는 이스라엘의 인식과 주장에 동의한 셈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지 5주 이상 지난 가운데, 가자지구 당국 발표 기준으로 가자 지구 안에서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민간인 희생이 심각해지자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국내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슬람권의 휴전 촉구 및 대이스라엘 규탄 목소리는 이미 지난 4일 블링컨 장관이 요르단을 방문해 중동 외교장관들과 만났을 때 확인됐다.

세계 최다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인류를 위해서 가자에서 벌어지는 잔혹 행위를 막고 휴전이 이뤄지도록 더 많은 일을 해주기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의회에서도 지난달 27일 크리스 머피(코네티컷), 크리스 밴 홀런(메릴랜드), 제프 머클리(오리건) 등 민주당 상원 의원 20여 명이 이스라엘의 민간인 보호 노력과 가자지구로의 연료 공급 노력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외교 당국인 국무부에서는 정치군사국 대외 업무 담당 과장이 '묻지마식' 대이스라엘 군사지원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달 18일 자진 사임한데 이어 최근 국무부와 국제개발처(USAID) 직원 100명이 정부 정책에 맞서는 메모에 연대 서명했다고 미국 매체 악시오스가 13일 보도했다.

메모는 이번 전쟁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틀린 정보를 확산하고 있다"면서 대이스라엘 정책 재평가를 촉구하고, 가자지구 교전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 민간에서도 옥스팜 아메리카, 국제앰네스티, 분쟁지역 민간인센터(CIVIC)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에 최근 서한을 보내 이스라엘군에 155mm 포탄을 지원하려는 국방부 계획에 우려를 표했다.

이런 국내외 목소리를 의식한 듯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이스라엘의 대(對)하마스 공격 권리 지지 및 휴전 반대를 고수하면서도 부쩍 민간인 피해 방지 등 인도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양상이다.

블링컨 장관이 10일 인도 방문 중 가진 기자회견에서 "너무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죽고 고통받았다"며 "민간인을 보호하고, 인도적 지원이 그들에게 닿도록 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며 사실상 이스라엘을 압박한 것이 일종의 '전환점'으로 보였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가자지구 내 병원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고, 같은 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현재의 '하루 4시간'에 비해 더 긴 '수일' 단위의 인도적 교전 중지를 원한다고 말했다.

대이스라엘 지원·지지와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우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모색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호응이 필요하다는 점이 미국으로선 고민거리일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의 공격을 미리 막지 못한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네타냐후 총리는 대하마스 전쟁 승리로 정치적 반등을 꾀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인도적 교전중지 등 미국측 '숨고르기' 요구에 전적으로 화답하지는 않고 있다.

게다가 '하마스 축출 이후'의 가자지구 통치 문제를 놓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미국에 잠재적인 부담이 되고 있는 양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 공존)에 입각해 이스라엘의 가자 재점령 불가를 강조하고 있으나 이스라엘 네타냐후 내각은 가자지구의 안보 관련 통제권을 하마스 축출 이후로도 상당 기간 보유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축출이라는, 미국과 공유하는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그 이후 다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권과 각을 세우며 미국을 딜레마에 빠트릴 수 있는 '불씨'가 이미 노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