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사회 "10여 년 만에 발생한 한국인 납치사건에 놀라…안전 최우선 환기"
60대 피해자, 병원서 안정 취하며 회복 중…"부상 있지만, 생명에 지장 없어"
납치범 3명, 폭력조직 소속된 베네수엘라 국적자…현지 경찰, 공범 추적중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페루에서 10여 년 만에 교민 피랍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페루 한인 사회가 충격 속에 안전망 점검에 나서고 있다.
남미에서 납치 사건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할 때, 교민들은 이번에 납치됐던 피해자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종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남미서부협의회 페루 분회장은 25일(현지시간) 연합뉴스 통화에서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누구나 마음을 졸이며 상황을 접했을 것"이라며 "천운으로 큰 탈 없이 해결돼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루에서 26년째 사업을 하는 박 분회장은 일본계 대통령(알베르토 후지모리)을 배출한 페루에서 현지인들은 동아시아풍의 주민들에게 비교적 친근하게 다가오는 편이라고 전했다.
다만, 팬데믹 전후 주변국에서 이주해 온 이들의 경우 부유해 보이는 아시아계를 각종 범죄의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지에서 부쩍 커졌다고 한다.
박종래 분회장은 "교민들이 위험한 곳으로의 이동을 최대한 자제하거나 혼자 오랜 기간 외부에 머물지 않는 등 안전 수칙을 공유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조심하며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환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앞서 60대 한인 사업가는 전날 괴한에 의해 납치됐다가 만 하루 만인 이날 이른 아침 경찰에 의해 구출됐다.
페루 내무부와 경찰청(PNP) 설명에 따르면 납치범들은 피해자 측에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 뒤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경찰의 포위망에 포착됐다.
이들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차량을 거칠게 몰며 강하게 저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호를 위반하며 과속으로 도심 한복판을 내달리며 경찰과 총격전도 벌였다고 페루 경찰은 밝혔다.
도주 과정에 납치범들은 경찰차를 향해 수류탄 2개를 던졌고, 이 중 1개가 폭발하면서 경찰관 1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차량 뒤쪽 창문도 크게 파손됐다.
경찰은 로스 하스미네스 델 메트로폴리타노 간선급행버스(BRT) 정류장 근처에서 이번 사건을 벌인 3명을 검거하고 범죄에 쓰인 차량 뒷좌석 바닥 쪽에 있던 한인 피해자의 신병을 안전하게 확보했다.
현지 일간 엘코메르시오는 체포된 피의자 신원을 에두아르도 호세 블랑코(29), 빅토르 마누엘 카스트로 우르타도(25), 안데르손 아브라암 라벤테이슨 베탄쿠르(29)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국적으로, '로스 차모스 델 나랑할'이라는 이름의 범죄 조직에 소속돼 있던 것으로 페루 당국은 파악했다.
페루 경찰은 폭발물 처리반을 동원해, 피의자들이 투척했으나 터지지 않은 수류탄 1개를 안전하게 제거했다.
또 이번 사건 공범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추가 수사를 하고 있다.
억류 과정에 신체 일부를 다친 피해자는 현재 리마 시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다.
피해 교민 안전을 직접 확인한 주페루 한국대사관 측은 "병원에서 정밀검사 소견을 냈지만, (피해 교민)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교민께선 배우자의 도움을 받으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라고 전했다.
남미 국가 중 그간 비교적 안정적인 치안 상태를 유지하던 페루에서는 팬데믹 전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경제난 등으로 인한 납치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2020년 1천698건이었던 페루 납치사건 발생 건수는 2021년 2천860건, 2022년 3천398건, 2023년 4천60건으로 매년 늘었다.
주페루 한국대사관은 지난 5월 관련 안전 공지를 통해 '납치범을 자극하지 말고 몸값 요구를 위한 서한이나 녹음을 요청할 때는 이에 응할 것', '이동할 경우 도로 상태 등을 최대한 기억할 것', '구출된다는 희망을 갖고 최대한 건강 상태를 유지할 것' 등과 같은 피해 시 행동 요령을 공지했다.
앞서 페루에서는 2011년 당시 10대 한인 학생이 등교 중 괴한에 납치됐다가 19일 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페루 정부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현재 치안 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wald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