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파괴 반대' 소감에 동료 수상자도 "감명"…현지 방송 '블랙리스트·광주' 소개 눈길
언론사 장비 검색에 탐지견까지 동원…한강 수상에 韓매체에도 관심·인터뷰 요청도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10일(현지시간) '노벨상 시상식 연회' 현장을 생중계하던 스웨덴 공영방송 SVT 진행자가 이렇게 물었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취재하러 집결한 한국 매체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커지면서 생방송 중 연합뉴스 기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 온 것이다.
이날 직접 참석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 및 연회 현장에서는 곳곳에서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에 대한 높은 관심을 체감했다.
검정 드레스 차림의 한강은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열린 연회장에 주요 귀빈 및 다른 부문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입장했다.
남녀가 쌍을 이뤄 입장하는 전통에 따라 한강은 스웨덴 마들렌 공주의 남편인 크리스토퍼 오닐의 에스코트를 받았다.
한강은 오닐과 안드레아스 노를리엔 국회의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등과 함께 중앙에 마련된 메인테이블에 앉았다.
이날 연회 만찬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3코스 메뉴를 먹는 동안 한강은 동석자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한강은 만찬이 끝날 때쯤 네 번째 순서로 수상소감도 밝혔다.
특유의 잔잔한 어조로 미리 준비해온 영어 수상 소감을 낭독하자 비교적 시끌벅적했던 현장이 한순간 고요해졌다.
한강은 수상소감에서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연회가 끝난 뒤 현장에서 만난 올해 화학상 공동 수상자 존 점퍼(39)는 "그녀(한강)의 수상 소감이 정말 감명 깊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기자라고 설명하자 "한강의 작품을 영어 번역본으로 읽어 봤느냐"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연회는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축하하기 위해 약 일주일간 진행되는 '노벨 주간'의 하이라이트 행사다.
1천20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신속히 서빙을 하기 위해 약 130명이 투입됐고, 이들은 중앙 계단에 자리한 이른바 '서빙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칼군무를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스웨덴 대표 싱어송라이터인 랄레(Laleh)의 무대와 전문 댄스그룹의 공연 등도 진행됐다.
노벨주간 주관 방송사인 SVT는 4시간 넘게 이어진 연회 전 과정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지인들끼리 모여 노벨상 시상식 만찬 생중계를 보며 격식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춤을 추며 즐기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SVT는 생방송 중간중간 사전에 진행한 수상자들의 인터뷰와 주요 작품 및 연구 성과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한강의 경우 '(과거) 정권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스웨덴어 해설이 흘러나와 눈길을 끌었다.
방송은 "1980년 그의 고향인 광주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민간 시위대와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학살이 발생했다"며 "당시의 학살은 한강의 삶을 특징짓고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의 출발점이 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연회에는 약 1천250석이 준비됐으나 언론사에 할당된 좌석은 25곳에 그쳤다. 이 가운데 한국 매체는 연합뉴스를 포함한 8곳이 초청장을 받았다.
보통 노벨상 수상자들의 국적과 신청 언론사를 고려해 초청장을 발송하지만, 올해는 한국 언론사에 가장 많은 초청장을 보냈다고 노벨재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취재진에게는 물론 영상 카메라 및 오디오 스태프들을 포함한 모든 초청자에게 전통에 따라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으라는 사전 안내가 이뤄졌다.
행사 중에는 노트북 반입이 금지돼 연미복과 드레스 차림의 취재진 일부가 연회장 입구에서 노트북을 켜고 기사 작성을 하기도 했다.
아울러 언론사 카메라 장비의 경우 아침 일찍부터 별도 보안검사 및 탐지견까지 동원되는 등 까다롭게 진행됐다.
국왕을 비롯한 주요 귀빈이 한 자리에 모이는 초대형 이벤트인 데다 120여년간 이어진 노벨상 시상식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일각에서는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일부 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황재하 기자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