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면접 논문 "거짓 정보 많아 분석 무의미" 반응까지
투자 사유는 다양…"손실에도 초연함 배우며 시장 적응"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자산 가치나 유통에 관한 정보 부족에 시달리고 시장 주체에 대한 불신 속에 거래를 계속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투기와 일확천금을 위해 암호화폐를 산다는 일각의 통념과 달리 투자 사유는 금융투자 공부나 노후 대비 등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는 법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친코인' 성향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져 투자 인기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작년 10월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양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에서 운영되는 활성 계좌는 도합 770만개에 달하며, 이 계좌들의 평균 보유액은 893만원으로 집계됐다.
28일 학계에 따르면 서울대 소비자학과 최현자 교수팀은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면담한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소비자학연구' 최신호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암호화폐에 300만원 이상을 투자한 경험이 있는 시민 28명을 연령·성별·직업 등에 따라 선별한 뒤 투자정보를 얻는 방법, 시장에 대한 인식, 거래를 시작한 사유, 투자 후의 변화 여부 등을 심층 조사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암호 화폐의 발행 배경이나 시세 등에 관해 정보가 일방적으로 부족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많이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중에 유통되는 정보도 사기를 노린 엉터리가 많고 극히 소수만 열람할 수 있는 내용이 적잖아 '정보 탐색이나 분석을 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연구 참여자들은 백서 등 공식 정보보다는 '알음알음' 찾아낸 인적 네트워크에서 얻는 단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정보를 추천하는 주체가 나를 속일 가능성이 있는가'를 자문하고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되면 이를 따르는 게 그나마 최선이라는 것이다.
암호화폐 발행자와 거래소 등에 관한 신뢰도는 매우 낮았다.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를 내세우는 만큼 시장을 감독하는 주체가 애초에 없고, 과거 시세조작이나 허위·부실 백서 등의 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한 사유는 타 금융투자 상품처럼 다양했다.
'여윳돈으로 집안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노후 대비의 수단' '부자 옆에 서서 기회를 노리고 싶었다' '돈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등 여러 답변이 나왔다.
면담 답변자들은 대체로 포트폴리오(투자대상)를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하지 않고 '오를 것 같은 코인'에 몰아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투자자들 사이에 변동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성향이 대세로 굳어졌고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포트폴리오 후보 탐색이 어려운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투자 손실이 나면 자책하기보다는 이를 '예방주사' '초연함을 배우는 계기' '성장통' 등으로 수용하며 시장에 적응하려고 하는 모습이 많았다.
연구진은 "이들은 암호자산 시장에서 성공과 실패 경험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투자철학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변동성이 크다고 접근을 배제하기보다는 소비자의 권리 보장 방안을 고민해 암호자산이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쓰이는 상품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