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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젤렌스키 배제는 계획적…미·러 관계, 급진적 새 국면 진입"
미러 2차회담 튀르키예 개최 가능성…크렘린궁 "美외교 급변, 우리 비전과 일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노딜 파국'으로 끝나면서 '경제적 이익'을 고리로 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재정립'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은 "노련한 외교관이 봤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젤렌스키를 맹렬히 비난한 것은 계획된 정치적 '강도 행위'였고,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지도자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그를 향후 모든 일에서 배제하기 위해 만든 함정이었다"고 평가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에 취임한 후 목격되는 행보는 '돈' 문제를 넘어선 미국과 러시아 관계의 근본적인 재정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긴장 관계에 있던 양국 관계가 새롭고 급진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향후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동맹이 돼야 한다는 미국 우파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CNN은 아직 공개적으로 발표된 내용은 없지만, 물 밀에서 진행되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논의 역시 빨라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CNN은 러시아 측 반응과 관련해서도 "계획된 것이든 아니든, 백악관의 '막말 시합'에 기쁘게 반응한 러시아는 이제 미·러 관계 재건을 위한 회담이 앞으로 몇 주간 계속되고, 심지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내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미국과 러시아가 비공개로 논의하고 있는 '경제 거래'의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달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하고 우크라이나 종전 회담을 열었으며 2차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양국이 첫 회담에서 에너지, 우주탐사 등을 포함한 경제 협력 재개를 검토하기로 한 만큼 후속 회담에서는 진전된 협력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튀르키예에서 미·러 대표단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경제 협력을 통해 관계를 재정립하려 한다는 정황은 러시아 당국자나 외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 2021년 완공됐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멈춰선 러시아-독일간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2'를 재가동하기 위해 미국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미·러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부로 러시아 측이 미국 기업인들에게 비공식 경로를 통해 투자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해외 투자·경제 협력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도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의 사업적 통찰은 바이든의 이야기를 무너뜨린다. 러시아를 물리치려는 시도는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투자, 경제 성장, 인공지능(AI) 혁신, 화성 탐사, 인류를 위한 더 나은 미래 건설에 집중하자"면서 미국에 러브콜을 보냈다.
미국의 빠른 입장 선회를 주목하는 반응도 러시아에서 나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공개된 자국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새 행정부가 외교 정책을 급격히 바꾸고 있다"며 "이는 대체로 우리의 비전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미국 간 관계에서 (그동안) 큰 피해가 있었고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도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가 유지된다면 이 길은 꽤 빠르고 성공적으로 진척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콘스탄틴 코사체프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도 이날 텔레그램에 쓴 글에서 영국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한 유럽 주요 정상 회의 결과를 비웃으며 "유럽에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우크라이나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러·미 관계의 진전일 것"이라고 미·러 관계 개선에 기대를 드러냈다.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withwi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