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5시 기준 피해 총 30건…의성·안동 등 경북서 피해 이어져
사찰·종가 소장 유물 1천581점 긴급 이송…당분간 피해 조사할 듯
'세계유산' 하회마을·병산서원도 한때 비상…방재 체계 점검 필요
경북 북부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의 중심 불길이 149시간 만에 진화되면서 국가유산(문화재) 현장도 한시름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강한 바람을 탄 '불 회오리'는 천년 고찰 의성 고운사의 주요 건물을 집어삼켰고,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문화유산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피해가 확인된 국가유산 사례는 총 30건이다.
피해 사례 가운데 보물, 명승 등 국가 지정유산은 11건, 시도 지정유산은 19건이다.
오전 11시 기준 집계치(27건)와 비교하면 6시간 만에 3건 더 늘었다.
안동 임호서당과 세덕사, 청송 송정고택 등이 이번 불에 일부 소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625∼702)가 만든 사찰 중 하나인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은 이번 산불로 곳곳이 잿더미가 됐다.
불길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 가운루 두 건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탔고 나머지 건물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다.
2020년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은 조선시대 영조(재위 1724∼1776)와 고종(재위 1863∼1907)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기로소는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다. 고운사 연수전은 조선시대 사찰안에 지은 기로소 건물로는 원형을 유지한 유일한 사례였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형태의 독특한 누각 가운루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조선 중·후기에 성행했던 건축양식이 잘 남아있는 이 건물은 지난해 7월 보물이 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전소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향후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나, 보물로서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이 밖에도 청송 사남고택·만세루, 안동 지산서당·지촌종택·국탄댁 등 옛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 전소됐고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도 불에 탔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국가유산을 지키려는 노력은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은 봉정사, 부석사 등 주요 사찰과 종가에서 소장한 유물 24건(1천581점)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석탑 등에는 불이 번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방염포를 설치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진 경북 안동 만휴정은 앞서 소실됐다고 알려졌으나 위험 속에서 방염포를 덮고 물을 뿌린 현장 관계자 덕분에 제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에서는 연일 긴장 태세를 유지하며 1∼2시간마다 반복적으로 물을 뿌리고, 인근 나무를 베는 등 '철통 방어'에 나섰다.
경북 산불의 주불은 잡혔지만, 향후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화마가 집어삼킨 의성 고운사의 경우, 지난 26일 기준으로 사찰 전각 30동 중 21동이 전소되고 9동이 양호하다고 전해졌으나 구체적인 피해는 현재 조사 중이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접근이 쉽지 않은 경우도 상당수다.
불길을 피해 긴급 이송한 주요 문화유산도 상태를 면밀히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은 "산불 관련 국가유산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현장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역대급 피해를 가져온 이번 산불을 계기로 국가유산 방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국가유산청은 산불 위험으로부터 국가유산을 지키기 위해 며칠간 물을 뿌리고 방염포를 설치하는 등 긴급 조치에 나섰으나 적잖은 피해가 발생했다.
국가유산방재학회장인 백민호 강원대 교수는 "기존의 대응 체계와 방재 대책은 한계가 있다"며 "기후 위기, 산불, 풍수해 등에 대비한 국가유산 방재 기반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