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선 제안' 요구한 미국…'무역균형+규제완화+방위비' 범정부 패키지 마련
LMO감자에 구글지도 반출 '전향검토'…조선·LNG '지렛대' 기대
'현상유지' 방점 권한대행 체제서 협상…"결정 다음 정부 넘기는 방법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등 5개 우방국들과 무역 합의를 먼저 도출한다는 목표를 내놓아 이르면 내주 진행될 한미 고위급 협상이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미국이 '최선의 제안'을 가져오라면서 상대국에 공을 넘긴 상황에서 정부는 에너지 등 미국산 상품 수입 확대와 미국 측이 주장하는 '비관세 장벽' 해소 노력을 강조해 관세 최소화를 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 '관세전쟁 고전' 트럼프, 우방국서 우선 '성과' 기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14일(현시지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내주 한국과의 무역 협상을 예고하면서 한국 등 상대국들이 가져오는 '최선의 제안'(A game)에 따라 협상이 매우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주요 우방국과 먼저 무역 합의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방향성을 선명히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90일의 상호관세 유예 기간 한국, 영국, 호주, 인도, 일본 5개국을 최우선 협상 목표(top targets)로 삼겠다고 주변에 밝혔다.
이런 접근은 거센 중국의 맞대응, 증시 폭락,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국채 가격 하락)이 초래한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 추진 동력이 한풀 꺽였다는 평가 속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합의 도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한국 등 동맹국과 협상에 속도를 내 자신의 무역 정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 마련이 시급해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을 향한 미국의 '합의 요구'가 강해져 당국 접촉이 탐색전에서 벗어나 본격적 협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 안덕근 내주 방미…경제+안보 '원스톱쇼핑' 협상 준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르면 내주 방미해 대미 협상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정부는 무역 균형 추구와 비관세 장벽 해소 노력 등을 함께 담은 패키지를 미국에 제안해 관세 부담을 최소화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이 '관세 전쟁'에 나선 근본 배경이 된 무역 균형과 관련해서 정부는 보다 구체화한 로드맵을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로드맵에는 가스, 원유, 농산물 등의 구매를 늘리는 수입 확대와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기존 수출 제품을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수출 대체라는 양대 축으로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에 가시적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예상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미국이 FTA 체결국인 한국에 상호관세 부과 명분으로 삼는 비관세 장벽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집중적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최근 농촌진흥청이 미국 심플롯사의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감자 대상 작물 재배환경 위해성 협의 심사에서 적합 판정을 내린 것을 두고 통상 환경에 관한 고려가 있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는 또 대부분 주요 서방국들에서 구글이 이미 정밀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 중인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도 전향적으로 들여다볼 기류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된 협상 대상인 무역 균형과 비관세 장벽 우려 해소와는 직결되지는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두는 조선 협력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문제도 '원스톱 쇼핑' 식의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알래스카 LNG는 개발이 계획대로 돼도 2030년 무렵부터 상업 생산이 가능해 트럼프 2기 정부 임기 내 무역 균형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두는 사업인 만큼 한국의 참여가 충분한 협상 지렛대가 될 전망이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15일 강연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한국의 대미 관세 협상 패키지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이슈에 주한미군 주둔 비용 등 안보 문제까지 포함한 '원스톱 쇼핑' 식의 협상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주한미군 분담금 조정 문제까지 포함한 대비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당국자는 "오늘 범경제 부처와 안보 부처 장관들이 모여 미국에 제시할 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연다"며 "부처별로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안을 모두 내놓고 이를 모아 안 장관이 내주 방미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반도체 등 미 관세 불확실성 여전…정부 '신중 기류'
다만 우리 여전히 우리 정부 내에서는 미국이 아직 한국의 핵심 수출품인 반도체, 스마트폰 등 관세 부과 계획을 내놓지 않는 등 상황이 여전히 극도로 유동적인 상황이어서 한국이 협상을 서둘렀을 때 자칫 장기적 국익에 손해가 클 수 있어 일본 등 주요국과 속도를 맞춰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강한 편이다.
정부 관계자는 "마음이 급한 쪽에서 말이 많아지게 되어 있다"며 "상황이 고정됐다면 우리가 균형점을 찾든지 하겠지만 계속 상황이 바뀌고 있어 합의를 막 했는데 다시 상황이 바뀌면 난처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양한 국내 이해관계가 얽힌 대미 통상 협상이 공교롭게도 6월 3일로 예고된 차기 대선이 임박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현상 유지'에 방점이 찍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현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 토대를 마련해놓되 중요한 최종 결정은 정치적 정당성을 새로 획득한 차기 정부에서 내리거나 사전에 초당파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협상의 전체적 윤곽은 잡고 큰 틀에서 타협하고 미묘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다음 정부에 넘겨주는 것도 방법"이라면서도 "미국의 협상 제안에 손 놓고 있기에는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여야가 협상 대표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야 미국 측도 이번 협상이 다음 정부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에 대해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김동규 이슬기 기자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