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풍경 그대로지만 軍과 최고수사기관 FBI 요원들까지 순찰 투입
백악관앞 수십년 '텐트시위' 관계자 "노숙자 취급하며 철거할까 두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이하 DC)의 치안 상황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 사흘째인 13일 밤(현지시간) 기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수도의 상징적 공간인 내셔널몰 주변과 DC 도심을 2시간 이상 둘러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DC의 치안을 담당해온 시 경찰 당국을 연방 통제하에 두고, 주방위군을 치안에 투입키로 결정한 상황에서 거리 풍경과 시민들 일상이 이전과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이날 도심 여러 장소 중 마지막으로 백악관 앞을 찾기 전까지는 평소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전날부터 800명 이상 투입됐다던 주방위군은 기자가 다닌 공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순찰하는 경찰차 몇 대와 경찰관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예전에도 있었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비 온 뒤 저녁 산책을 위해 DC의 상징물인 워싱턴모뉴먼트(워싱턴기념탑) 주변을 찾은 시민들 역시 평온한 모습이었다.
유일하게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은 백악관 앞이었다.
수십명의 관광객과 공원에 텐트를 친 대여섯명의 시위대가 있을 뿐인 백악관 앞은 조용했고,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10명 이상의 법집행 요원들이 배치된 채 순찰하고 있었다. 전날에 비해 경비가 한층 삼엄해보였다.
수십년간 백악관 앞 터줏대감으로 자리해온 핵확산 반대 시위 텐트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 네이딘(60) 씨는 기자에게 "어제도, 그제도 여기 있었는데 오늘처럼 보안요원이 많은 것은 처음"이라며 "30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최고 수사기관인 연방수사국(FBI) 조끼를 입은 요원들이 백악관 앞 순찰에 투입된 것이었다.
FBI와 경찰 요원들은 피켓 등을 든 채 조용히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에게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았고, 그저 백악관 앞 공원을 반복적으로 왕래했다. 현장의 관광객들은 이들 법집행 요원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백악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네이딘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문제 등에서 관심을 돌리려고 이러는 것 같다"며 "(반핵확산) 시위 텐트가 수십년간 여기에 있었는데, 당국이 노숙자 야영 시설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철거할까봐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이 '제로'라고 밝힌 반부패 시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돈을 쓰지 않고, (사람들을) 내보내는 데 돈을 쓰려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치안 강화를 명목으로 워싱턴 DC의 노숙자들을 몰아내려 하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
워싱턴 DC의 치안 상황이 '통제불능'이라며, DC 치안 업무를 연방 정부 통제 하에 두고, 군까지 동원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미국 사회에서 논쟁을 낳고 있다.
국가의 얼굴인 수도의 치안 강화는 명분이 있고, 연방 정부와 군의 참여를 통해 실질적으로 치안 상황이 개선된다면 좋은 일이라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반면 DC의 치안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강력 범죄 등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도 있는 터에 군까지 동원하는 것은 '전시 행정' 수준을 넘어 '치안의 정치화'로 봐야 한다는 비판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다른 여러 논쟁적 이슈와 마찬가지로 이 사안에 대한 찬반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반의 단층선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건설적인 논쟁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케네디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연방법상 연방 정부가 DC 경찰권을 통제할 수 있는 기간인 30일이 경과한 후에도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백악관은 DC 거리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연방요원과 주방위군 숫자를 크게 늘리고, 24시간 순찰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DC의 일부 주민들은 이날 이같은 정부 방침에 항의하며 거리에서 "파시스트는 집에 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