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갯벌에서 고립된 사람을 구하다가 순직한 고 이재석(34) 경사의 영결식이 15일 거행됐다. 이 경사의 임용 동기인 동료 경찰관은 고별사에서 "사람들이 너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어둠 속 바다에서 혼자 싸웠을 너의 모습이 떠올라 비통함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유족들도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다.

▶동료들의 폭로 기자회견
이날 영결식에 앞서 있었던 폭로 기자회견은 유족들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더했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에서 이 경사와 함께 사고 당일 근무했던 동료 4명은 "소장으로부터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니 사건과 관련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소장이 유족을 보면 '눈물을 흘리고 아무 말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달라'고 했다"라고도 했다. 이게 '서장 지시사항'이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천해경서장은 "진실 은폐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해 진실 공방으로 번졌다.
앞서 유족도 해경 측이 언론 접촉을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경사의 사촌 형은 "병원에서 누군가 와서 여러 차례 유족에게 '재석이는 영웅이다. 혹여나 흠집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사에는 (사고 관련) 말씀을 안 하시는 게 좋겠다릫고 얘기했다"며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서장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폭로 기자회견 후 이재명 대통령이 외부 기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늦지 않게 사고의 진실이 가려지길 기대한다.

▶국가 책임 회피 위한 미담 쏟아내기
지난 11일 이 경사가 사고로 숨진 후 그를 둘러싼 미담이 쏟아졌다. '생일인데도 안전관리 수요가 급증하는 주꾸미 철을 맞아 연가도 쓰지 않고 근무했다릮 '해경교육원 시절에 교육원장 표창을 받았고, 이후로도 기관장 표창을 여러 번 받았다릫.'성실하고 정의로운 성격이었다릮 등 동료들의 입을 빌린 보도들이 이어졌고, 그런 것들은 이 경사를 더욱 '영웅릫으로 만드는 서사가 됐다.
하지만 '영웅 서사릮뒤에는 제도적 과오가 가려지기 십상이다.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이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그를 '영웅릫으로 만들어 칭송했지만, 유사한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영웅담이 제도적 문제점을 희석하는 결과를 낳곤 한다. 이번에 해경 간부들이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려고 한 것도 어쩌면 이런 '학습 효과릮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적 참사가 있을 때마다 구조적 원인에 집중하지 않고 개인 영웅서사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았나 되돌아봐야 한다. 개인의 헌신이 강조되다 보면 구조적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기 어렵다. 영웅 만들기가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가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독자나 시청자가 영웅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관련 뉴스를 선호하다 보니 그런 보도만 좇고 제도 개선 문제에는 관심이 덜한 경향이 있었다.

▶누구를 위한 '영웅 만들기' 인가
이 경사는 홀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업무를 수행한 그를 영웅이라고 부를 게 아니라 위험하게 일하도록 내몰린 이유를 밝히는 게 우선이다. 왜 그가 혼자였는지, 왜 그것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동료에게 침묵을 강요했다는 의혹의 실체는 무엇인지 등을 가려야 한다. 진상에 따라 잘못이 있다면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제복을 입은 영웅들의 헌신에 맡기는 일이 계속돼선 안 된다. 결국에는 시스템을 개선해 사람이 아닌 제도가 안전을 담보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더는 영웅으로 치켜세우지 말자. 진실이 가려질 수 있다. 이 경사는 '사실릫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