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등에서 무분별 노출
자극적 '밈' 뜻도 모르고 모방
전문가 "안 보여줄 수 없으면 같이 보며 설명해줘야"
유아들의 미디어 노출이 갈수록 늘어나며 유튜브 등에서 유행하는 영상이 유아들의 언어 습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 남양주에서 일하는 5년 차 유치원 교사 이모(28)씨는 최근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한 5세 아이가 '좋은 말과 나쁜 말을 알아보자'는 질문에 'X발'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머리가 아프다'라고 했더니 '뚝배기요?'라고 반문하는 원생도 있었다"며 "유튜브를 통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을 무분별하게 습득하고 있는 것 같다"고 8일 연합뉴스에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원생들이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인기를 끄는 쇼츠 노래를 의미도 모른 채 따라 하는 건 일상이라고 한다. 칠레 가수 크리스텔 로드리게스의 '두비두비두' 가사 "찌삐찌삐 짜빠짜빠"나,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 시리즈의 프로젝트 유닛 '아이스크림'(AiScream)의 노래 가사 "나니가스키"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고운 말'은커녕 유튜브 속 밈(meme·유행어)이 교실을 덮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인천의 6년 차 유치원 교사 선모(28)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원생들이 '맛있는 음식' 보고 "역대급 비주얼"이라 한다거나 '오 마이 가스레인지',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 같은 출처 불명 표현들이 교실에서 유행 중이라고 한다.
선씨는 "자극적인 밈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올바른 언어 표현을 어려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아동의 언어 발달에 미디어가 큰 영향을 미치지만, 지난해 3∼9세의 인터넷 이용률은 92.0%(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달했다. 부모들은 미디어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3세 딸을 둔 이재윤(36)씨는 "식사나 이동 중 유튜브 시청을 극도로 제한하지만 사람 많은 식당에서 대기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보여주게 된다"며 "(보여주지 않아도) 친구들의 영향으로 의미를 모르는 말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6세 아들을 둔 김민석(43)씨는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영상을 많이 틀어주니 연령대에 맞지 않는 단어들도 많이 접하는 것 같다"며 "부모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아동의 미디어 노출을 제한하는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단기간 내 규제를 신설하기는 어려운 만큼 부모가 스스로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아동의 연령에 따라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를 제한하는 등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지만, 콘텐츠 제작자나 미디어 산업과의 갈등이 예상되기에 국가가 무조건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맞벌이 중심으로 삶이 바뀌며 아이에게 기기를 주지 않는 것은 힘든 상황"이라며 "핵심은 아이와 휴대전화를 단둘이 두고 방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능하면 부모가 같이 보면서 설명을 해주라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세 살 버릇이 여든 가듯, 안 좋은 언어습관이 형성되면 좋은 습관을 덮어쓰는 것은 몇 배로 힘들다"며 "부모도 다시 유치원에 들어갔다는 심정으로 스스로 유튜브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