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깨고서야 "잘못했습니다"…뒤늦은 후회 소용없어
음주사고 연간 2만여건 사망자 500여명…"음주 폐해 심각"

(전국종합=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술에 취해 잡은 운전대로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음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해 운전자들은 술이 깨고 나서 눈물을 쏟으며 후회하지만,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단란했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난 뒤다.

지난 16일 0시 19분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한 교차로에서 만취 상태의 장모(29)씨가 몰던 BMW 차량이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충격으로 택시가 앞으로 튕겨 나가면서 역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4대가 연쇄 추돌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택시 운전기사 A(60)씨와 바로 앞 스파크 차량 뒷좌석 탑승자 B(71·여)씨가 숨지고, 스파크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B씨의 큰딸(50)과 작은딸(47), 작은 사위 등 3명이 다쳤다.

이 밖에 최초 사고를 낸 장씨를 포함해 다른 차량에 있던 4명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사고 전 장씨가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온 상태에서 감속하지 않아 상당한 속력으로 추돌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피해자들은 누군가의 부모이자 배우자로, 저마다 애통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숨진 B씨는 얼마 전 사망한 언니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남양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됐다.

줄초상을 치르게 된 B씨 유가족들은 비통에 잠겨 있다.

더욱이 B씨의 옆자리에 탔던 큰딸은 얼굴 부위를 크게 다쳐 한쪽 눈을 실명했으며, 현재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치료받는 상태다.

B씨 유가족들은 장씨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사망자 A씨는 아내와 20대 딸을 둔 가장이다.

평소 근면·성실했던 A씨는 사고 당일 야간 운행에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찰은 장씨가 퇴원한 최근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사고 직후 부상으로 인해 호흡측정이 불가능했던 장씨로부터 혈액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그는 면허취소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3%가 넘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블랙박스 영상을 도로교통공단에 의뢰, 장씨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다 사고를 냈는지 조사하고 있다.

장씨는 경찰에서 "사고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죽을죄를 지었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술을 마시고 운전한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며 "현장 조사에서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면서 용서를 빌었다"고 말했다.

단란했던 한 가정을 산산조각낸 음주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인천 청라 일가족 사망사고', '크림빵 뺑소니 사건' 등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대표적인 음주 사고 사례다.

지난해 6월 인천 청라 국제신도시에서 술에 취해 트랙스 차량을 몰던 C(34)씨가 신호대기 중인 SM3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SM3 운전자 D(42·여)씨와 그의 아들(5), 어머니(66) 등 일가족 3명이 숨졌다.

목숨을 건진 사람은 D씨의 남편(39)뿐이었다.

C씨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122%의 만취 상태에서, 제한속도가 시속 60km인 도로를 135∼144km로 달리다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2015년 1월에는 충북 청주에서 화물차 운전을 마치고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만삭의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서 집으로 가던 강모(29)씨가 음주 차량에 치여 숨졌다.

이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신혼이던 강씨 부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경찰의 대대적 수사가 시작됐다.

심리적 압박을 받은 운전자 허모(39)씨는 사건 발생 19일 만에 자수했다.

그는 경찰에서 소주 4병을 마시고 운전했다고 진술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음주 사고 건수는 2014년 2만4천43건, 2015년 2만4천399건, 지난해 1만9천769건 등 해마다 2만∼2만5천여 건에 달한다.

음주 사고가 크게 준 지난해를 기준으로 해도 전체 교통사고(22만917건)의 약 9% 수준이다.

교통사고 10건 중 1건은 음주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최근 3년(2014∼2016년)간 음주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천656명, 다친 사람은 12만75명으로 집계됐다.

음주 사고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음주하면 인지 기능이 저하돼 운전 중 돌발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정월영 교수는 "시뮬레이터 분석 결과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1% 상태로 운전하면 제동 페달 반응 속도가 0.29초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짧은 시간 같지만, 차량 속도를 고려하면 엄청난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음주 상태에서의 운전은 어린아이에게 운전대를 맡겨 놓는 것만큼 위험하다"며 "술에 취하지 않았다거나 지금껏 별 사고가 없었다는 음주 운전자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술을 마시면 인지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으므로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kyh@yna.co.kr